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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한 용의 전설을 따라가는 고흥 미르마루길 가을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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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19 12:00:00 수정 : 2022-11-19 11:4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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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푸른바다 즐기는 고흥 미르마루길/우주발사전망대~다랭이논~몽돌해변~사자바위 포토존~미르전망대∼영남 용바위 걸어서 1시간/높이 120m 절벽 승천한 용이 훑고 지나간듯한 흔적 신기/대웅전 너머 우뚝 솟은 팔영산... 능가사엔 만추의 낭만 가득

 

영남 용바위

맑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드넓은 반석과 주위를 에워싼 기암괴석들. 서로 다른 빛깔로 켜켜이 쌓인 암반의 나이테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은 차가운 바다를 만나 버블이 꺼지면서 기기묘묘한 바위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거대한 수직의 용바위. 마치 용이 바다에서 나와 절벽을 훑으며 하늘로 오른 듯, 아주 선명한 자국을 남겨 놓았다. 자연이 빚은 위대한 조각작품, 고흥 영남 용바위 앞에 서자 전설이 사실로 다가온다.

 

미르마루길

◆다도해 푸른바다 즐기는 고흥 미르마루길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홍도, 흑산도, 완도 등 섬 1596개 놓인 바다는 마치 솜씨 좋은 작가가 빚은 작품처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런 바다와 섬들을 즐기며 늦가을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 전남 고흥군 미르마루길이다. 우주발사전망대~다랭이논~몽돌해변~사자바위 포토존~미르전망대∼용바위로 이어지는 길은 3.37km로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기에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영남 용바위
영남 용바위

미르마루길 끝에서 영남 용바위를 만난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바다와 접한 높이 약 120m의 바위산 절벽 가운데 거대한 용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약 5m 너비의 신비한 자국이 바다와 만나는 바닥에서 절벽 꼭대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색이 좌우 암반과 달라 확연하게 구분된다. 용의 몸통 격인 가운데는 용 비늘 처럼암반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또 양쪽 가장자리는 검은색 암벽에 여러 겹의 세로줄 무늬가 물 흐르듯 그려져 누가 봐도 용의 자국임을 확신하게 만들 정도다. 

 

사자바위 전망대
사자바위

여러 전설이 담겼다. 어릴 때부터 활쏘기 솜씨가 뛰어난 류시인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용추에서 두 마리 용이 승천하려고 싸울 때 한 마리의 용을 활로 쏘아 죽이지 않으면 마을에 큰 불운이 닥친다고 전한다. 류시인은 꿈이 하도 기이해 활을 들고 용추에 가보니 실제 청룡과 흑룡이 서로 먼저 승천해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물고 뜯으며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류시인은 마을을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활을 쏴 흑룡을 명중했다. 류시인의 도움으로 싸움에서 이긴 청룡은 용바위를 발받침 삼아 승천했기에 지금도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단다. 전설은 미르마루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사자바위로 이어진다. 흑룡은 화를 참지 못하고 류시인을 공격해 죽였고 승천한 청룡은 류시인의 용맹에 감동해 몽돌해변 앞에 수호바위를 만들었다. 실제로 보면 포효하는 사자의 옆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영남 용바위 지형
영남 용바위 해안

다른 얘기도 있다. 태초에 신이 고흥반도 동쪽 땅에 신령스러운 팔영산과 우미산, 아름다운 영남해안을 만든 뒤 이곳을 영원토록 보전하기 위해 용과 사자를 보내 지키게 했다. 용은 공덕을 쌓아 승천해 용신이 됐지만 사자는 공덕이 부족해 사자신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바위로 굳어졌단다. 이에 마을사람들은 용바위와 사자바위가 영남해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믿었고 큰일을 치르기 전에 꼭 이곳에서 안전과 풍요를 기원했다. 사자의 이빨을 만지며 소원을 빌거나 사자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액운을 막아 주고 소원이 이뤄진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사실 화산활동과 침식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워낙 신비하게 생긴 지형이다 보니 전설이 실제로 다가온다.

 

용굴
용두암

용바위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절벽에 커다란 동굴이 보이는데 승천하지 못한 흑룡이 사는 용굴이란다. 비 오는 날이면 분노로 가득한 흑룡의 울음소리가 기괴하게 울려 퍼지는데 사실 너울성 파도가 용굴에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 마을사람들은 울음소리가 들리면 얼마 뒤 태풍과 해일 등 큰 재난이 닥칠 것으로 여겨 대비했다. 용바위로 가는 길 입구에서 영락없이 용 머리를 닮은 용두암도 만난다.  마을 사람들이 승천한 용의 머리를 보고 싶다는 소원을 빌자 하늘이 용두암을 내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됐다. 

 

영남 용바위 해안

여러 전설이 있지만 탁 트인 바다 풍경 때문에 가슴이 답답할 때 찾기 좋다. 넓은 바위에 앉으니 바람이 분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의 파도를 따라서. 늦가을 눈부신 햇살은 실눈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은 사랑하는 여인의 손길처럼 부드럽다. 물고기를 낚는 것인지 세월을 낚는 것인지, 드넓은 반석에 앉은 강태공은 한가로이 팔베개를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소풍 나온 어린아이는 입안에 아직 김밥이 남았는데도 볼이 터져라 한 개 더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늦가을 풍경들. 미르전망대에 오르면 다도해가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사자바위 뒤쪽 몽돌해변도 달그락거리는 몽돌의 노랫소리가 정겹다. 

 

류시인과 용바위 전설 조형물
고흥분청문화박물관

◆팔영산 능가사엔 만추의 낭만 가득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야외 분청공원에서 서로 얽혀 싸우는 두 용과 활시위를 당기는 류시인의 청동조각을 만난다. 강상훈 작가의 작품. 국내 최대 규모의 분청사기 가마터인 운대리 가마터에 자리 잡은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고흥의 모든 역사문화자원을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분청사기와 운대리 가마터에서 출토된 유물도 만난다.

 

팔영산 능가사 연못
팔영산과 능가사 연못

팔영산 능가사로 들어서자 연못 주위로 단풍이 곱게 들어 만추의 낭만을 더한다. 바위에 적힌 ‘즉심시불(卽心是佛)’이란 문구가 심오한 깨달음을 전한다. 인간은 본래부터 마음에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기에 평소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부처라는 뜻. 대웅전 뒤로는 고흥의 랜드마크 팔영산이 웅장하게 솟아 올라있다. 중국 위왕이 대야에 비친 여덟 봉우리에 감탄해 찾아와 제를 올리고 그 이름을 ‘팔영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고흥군 점암면과 영남면에 걸친 팔영산은 8개 봉우리와 기암괴석으로 유명하다. 팔영산 정상에 오르면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즉심시불
대웅전과 팔영산

유서 깊은 능가사의 대웅전과 동종(범종)은 보물이며 사적비와 목조사천왕상, 추계당과 사영당 부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특히 능가사 범종은 1698년(숙종 24)에 주조된 것으로 이 종을 치면 인근 점암면 일대에 울려 퍼질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탐을 내 헌병대까지 끌고 가 종을 쳐봤으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팔영산 편백치유의숲
팔영산 편백치유의숲

◆마복산 흔들바위 오르니 다도해가 한눈에

 

팔영산 편백치유의숲으로 들어서자 파란 하늘 아래 한들거리는 분홍색과 하얀색 코스모스가 여행자를 반긴다. 올해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즐길 틈이 없었는데 가을이 천천히 지나가는 남도를 여행하는 덕분에 예쁜 풍경을 덤으로 얻어간다. 팔영산 편백치유의숲은 전국 최대 규모의 편백숲 국립공원으로 488ha에 이른다. 편백은 다른 나무보다 피톤치드 성분을 대량으로 내뿜어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데 30~40년생 아름드리 편백 숲을 따라 산책로 10km가량 이어진다. 숲으로 들어서자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간 편백들이 빽빽해 햇살이 어렵게 비집고 들어온다. 나무침대에 다리를 쭉 뻗고 누워 눈을 감으니 들리는 것은 새소리와 바람이 연주하는 나뭇잎 부대끼는 소리뿐. 싱그러운 피톤치드는 마음에 고요한 힐링을 안긴다. 

 

마복산
마복산 흔들바위

자연이 선사하는 숲의 기운에 힘을 얻어 마복산을 오른다. 말이 엎드린 형상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복산은 해발 약 540m 높이로 아담하다. 수많은 지릉마다 물개바위, 거북바위 등 기암괴석의 바위꽃이 활짝 피어 ‘소개골산(小皆骨山)’으로 불릴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 단풍이 물든 요즘 산행하기 좋다. 내산마을에서 출발해 마복사를 지나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올망졸망한 섬들과 해안선, 포구가 아름다운 다도해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흔들바위가 이곳의 매력 포인트. 경사진 절벽 끝 매달린 바위는 금세 굴러떨어질 듯 아찔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암반에 올라 두 팔을 하늘로 향해 쭉 뻗어 신선한 공기를 폐 안에 잔뜩 불어 넣으니 온몸이 늦가을 향기로 가득하다. 


고흥=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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