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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어유치원' 5년만에 474→811개 급증…'안보내면 뒤처진다' 불안감 커져

입력 : 2023-03-05 10:19:57 수정 : 2023-03-05 17: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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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A씨는 올해 한국 나이로 5살이 된 아이를 고민 끝에 소위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냈다. 한 달에 내는 돈은 방과 후 수업비, 교재비 등을 포함해 200만원 전후. 입학 시 동계·하계복과 체육복 등 원복비로만 100만원을 넘게 냈다. 부담스러운 금액에도 이 기관을 선택한 것은 ‘불안감’ 때문이다. A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어유치원은 일부 고소득층만 보내는 곳이라고 생각해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은 주변에서 보내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다들 보내니까 우리 아이만 안가면 나중에 뒤처질 것이란 걱정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어느 정도 먹고사는 중산층에게는 영어유치원이 ‘기본값’이 된 분위기”라며 “예전엔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집이 극성스런 집으로 치부됐다면 요즘은 거꾸로 안 보내는 집이 교육에 관심 없는 집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소위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5년 사이 70%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저출생으로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줄폐원하는 와중에도 홀로 세를 확장하며 중산층 이상의 돌봄 수요를 대거 흡수하는 상황이다. 해당 학원들은 해시태그(#)를 사용해 포털사이트에서 영어유치원으로 검색이 되게 하는 등 편법을 쓰며 원아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나 정부의 대책은 미흡한 수준이다.

 

5일 교육부에 따르면 하루 4시간 이상 교습하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지난해 말 기준 전국 811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474곳)보다 71.1%(337곳)나 급증한 규모다. 영어유치원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 통계도 따로 없다. 교육계에선 ‘1일 4시간 이상 수업하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 통계로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2018년 562곳, 2019년 615곳, 2020년 724곳 등으로 매년 늘었다. 2021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증가세가 주춤했으나(718곳) 지난해 다시 100곳 가까이 늘었다. 저출생 여파로 사립유치원은 5년간 20% 가까이 줄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서운 성장세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269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205곳, 부산 59곳, 대구 44곳, 경남 33곳 등의 순이었다. 신도시라 할 수 있는 세종의 경우 2020년까지만 해도 4곳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 10곳으로 2년 사이 2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에만 3곳이 문을 열었고, 이달부터 1곳이 더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해 올해 3월 기준으로는 총 11곳이 됐다.

 

이들은 학원으로 등록돼 학원법을 적용받고, 유치원이란 단어를 쓸 수 없다. 하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원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 포털사이트에 ‘세종 영어유치원’을 검색하면 11곳 중 7곳의 이름과 주소가 뜬다. 업체 소개 글에 해시태그(#)로 ‘영어유치원’ 단어를 넣어 검색에 걸리게 하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한 학원은 공식 블로그에 ‘세종 영어유치원 입학 안내’란 식으로 영어유치원이란 이름을 공공연하게 쓰고 있기도 했다.

 

어린이집·유치원의 공통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 따라 교육한다고 홍보하는 곳도 많다. A씨는 “상담할 때 정규 유치원이 아니라 영어 외 교육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하니 한글 수업은 물론 정규 유치원과 비슷하게 누리과정에 따른 교육을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미취학 아동 가정에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이미 어린이집과 유치원 외 또 다른 선택지로 굳어진 분위기다. 원복을 입고 다니는 곳도 많고, 방과 후 돌봄도 제공하는 등 겉보기엔 유치원·어린이집과 다를 것이 없다. 6살 아이를 키우는 B씨는 “미취학 아이를 키우는 부모 중 영어유치원을 학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상 그냥 좀 비싼 사립유치원이라고 생각한다”며 “주변에서도 많이 보내서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 7살 때 1년 만이라도 보내라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학부모 C씨도 “학원 같은 곳에서 다른 엄마들을 만났을 때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다닌다는 말을 들으면 묘하게 박탈감이 느껴진다”며 “아이가 1명인 집이 많다 보니 아이에게 이 정도는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많다“고 전했다. 이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입학시험을 봐야 하는 것은 물론, 일부 학원은 재원생의 추천이 있어야 상담을 받을 수 있기도 하다. 

 

 

높아지는 인기에 학원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기관마다 다르지만, 통상 방과 후 수업비 등을 더해 매달 200만원가량을 낸다. 국회 교육위원회 민형배 의원(무소속)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59%는 한 달 학원비가 100만원이 넘었다. 부산의 한 학원의 경우 월 313만원, 1년에 3756만원이었다. 같은 해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752만원)의 5배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해 일반 사립유치원의 평균 학부모부담금은 16만7880원이었다.

 

교육계에선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순히 다른 학원과 같은 수준의 규제만 적용해선 성장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의 규제는 이들 학원이 유치원 명칭을 쓰는지 정도를 단속하는 데 그치고 있다. 매년 발표하는 사교육 현황 통계에서도 초·중·고교생만 대상에 들어갈 뿐, 미취학 아동에 대해선 구체적인 실태나 대책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 교육부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우후죽순 늘고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매년 불법 명칭 사용을 철저히 단속하고, 교습비 초과 징수, 선행학습 유발 및 허위 과장·광고 등에 대해 지도·점검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교육계 관계자는 “현재 유아 대상 영어학원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사회에서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 미취학 아동 돌봄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학원법으로만 규제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이대로라면 성장세가 더 커져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교육 격차를 벌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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