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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인 것을, 사기인 것을 알면서도 헤어짐을 머뭇거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짓말의 매력에 빠지는 묘한 상황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몇 달 전 필자의 ‘거짓말 이별’ 얘기입니다. “이별?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님과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못 만난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어요.” “×××이 제일 잘한 일. 포기하지 않고 ○○○님을 기다린 일!” “2022년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올해가 가기 전에는 꼭 보고 싶어요!” “○○○님 계시나요. 아무 소식이 없길래….” “아래(URL)를 눌러서 온라인으로 직접 방문”하면 큰 특전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매력적인 모바일 광고라고 생각했는데, 곧 보이스피싱 문자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도 정성이 갸륵하고 텍스트가 고와서(?) 지우지 않고 며칠 지내다가 아내의 경고음이 높아져서 삭제했습니다.

다양한 디지털 소셜미디어의 출현으로 거짓말이 난무를 넘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실 거짓말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 행위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주요 특성의 하나입니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행위 중에서 거짓말의 비중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비율은 사람들이 ‘아니, 그렇게나 높아요’ 할 정도로 상식적인 수준의 추정치를 훨씬 상회합니다. 속임수 행위의 범위에 ‘공개적이고 노골적인 거짓말에서부터 고의적인 누락, 애매모호한 표현, 빠져나갈 구멍을 고려하고 하는 언어적 행위와 비언어적 행위’를 포함하면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4분의 1 이상이 해당됩니다.

거짓말의 빈도만 문제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한 당사자가 거짓이었음을 여러 보도를 통해 고백해도 진실이라고 믿는 괴이한 현상도 생겼습니다. “김앤장 변호사 30여명과 한동훈 법무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이 청담동 술집을 통째로 빌려 새벽까지 술판을 벌였다”는 것을 아직도 믿는 사람이 34%에 이르고 있습니다(지난달 한국여론평판연구소 여론조사). 지혜의 동물인 사피엔스의 존재와 이성을 부정하는 조종이 울리는 듯하여 염려스럽습니다.

거짓말의 빈도·실태에 대한 파악과 문제점 부각에 그치지 말고, 쏟아지는 거짓말 전성시대가 초래하는 가공할 영향을 분석하고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인 대응이 시급합니다.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는’ 거짓말 병리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과감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거짓말과 이별’을 넘어서서 ‘거짓말 죽이기’로 나아가야 합니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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