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 탈원전·포퓰리즘 후과
한전·가스공사 구조조정 시급
정부와 국민의힘이 어제 당정협의회에서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잠정 보류했다. 당장이라도 요금을 올릴 것 같던 태도가 하루 만에 사그라들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확인했다”면서도 “여론 수렴을 더 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분기 전기·가스 요금 결정 마지노선인 이날까지 최종 인상 여부 및 인상폭을 확정하지 못하면서 당분간 1분기 요금인 ㎾h(킬로와트시)당 146원이 그대로 적용된다. 2021년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한 이후 요금 결정을 유보한 건 처음이다. 민생안정이라는 명목을 앞세운 정부·여당의 고충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전 적자는 32조원, 가스공사 미수금은 8조원에 이른다. 한전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려면 2026년까지 전기요금을 ㎾h당 51.6원은 올려야 한다. 1분기 전기요금이 ㎾h당 13.1원 오른 걸 감안하면 남은 3차례 분기 요금 조정에서도 비슷한 인상이 불가피하다. 서민부담 최소화·물가안정과 에너지 요금 현실화 사이에서 나온 고육지책이겠지만 무책임하다.
여론 수렴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요금 인상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공청회 등 여론 수렴을 거치더라도 국민들이 요금 인상을 반길 리 없다. 여름철 전력소비량이 급증하는 3분기가 되면 내년 총선을 의식해 요금 인상 자체가 더 어려워질 게 뻔하다. 언제까지 ‘폭탄 돌리기’를 답습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요금을 무턱대고 올리라는 게 아니다. 밑지고 판다는 건 경제원리와 맞지 않는다. 국민부담 최소화를 내세웠지만 현 상황에서 요금 인상말고는 대안이 없다. 공기업 적자는 어차피 혈세로 메워야 한다. 엎치나 메치나 국민 호주머니를 터는 건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겨울 ‘난방비 대란’이 일어나자 1분기 가스요금은 동결했지만 올해 가스요금을 지난해 인상분의 1.9배인 MJ(메가줄)당 10.4원 인상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문재인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단가가 높은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린 데 따른 후과다. 설계수명이 남아 있는 멀쩡한 고리 2호기 원전을 2년간 세워놓는 것도 모자라 태양광 설비를 마구 늘리는 바람에 송배전망이 감당하지 못해 태양광 발전을 강제로 줄여야 할 처지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데도 에너지 공기업 적자의 책임이 큰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전기·가스 요금 인상 계획 전면 재검토를 외친다. 문재인정부 실정에 대한 반성은커녕 정략적 선동만 일삼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자신들의 탈원전과 에너지 포퓰리즘의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이 보고 있는데도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나. 정부는 전기·가스 요금 인상 시 우려되는 물가충격을 최소화하고 취약계층의 고충을 보듬을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놓아야 한다. 빚더미에 앉은 한전·가스공사 임직원은 염치없는 급여 인상을 접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국민도 에너지 과소비에 젖어 있는지 되돌아보고 절약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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