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4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 대표팀은 대회 시작 전까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과거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듀오’ 이승우(수원FC)와 백승호(전북)가 활약하며 16강을 이룬 2017 U-20 월드컵, ‘골든볼(MVP)’ 이강인(마요르카)을 앞세웠던 2019년 대회까지 ‘스타’가 있었지만, 이번엔 없었기 때문이다. 전체 21명 가운데 19명이 프로 선수지만 소속팀에서 주전급으로 분류되는 선수는 적었다. 한 세대를 건너뛴다는 의미인 ‘골짜기 세대’라는 불편한 표현까지 따라붙을 정도였다. 기대보단 우려가 컸던 태극전사들은 결국 이번 대회에서 제대로 증명했다. 한국이 지난 대회에 이어 2연속 4강 신화를 이루는 데 앞장섰다.
선수들은 김은중호의 ‘실리 축구’ 속에서 똘똘 뭉쳤다. 과거부터 이어진 한국 축구 특유의 투지와 함께 조직력 있는 팀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탄탄한 수비로 상대의 공격을 틀어막고 역습에 집중했다. 프리킥과 코너킥 등 세트피스를 통해 상대의 허점을 찔렀다. 이 전략은 그대로 적중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우승 후보’ 프랑스를 꺾는 것을 시작, 5경기 연속 무패(3승 2무) 행진을 이어가며 준결승 티켓을 따냈다. 이번 대회 8골 중 절반인 4골이 세트피스일 정도로 조직적인 움직임 속에서 결정적인 한 방이 매번 빛났다.
경기가 거듭될수록 어느 때 보다 돋보이는 예비 ‘스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골 4도움으로 맹활약 중인 ‘캡틴’ 이승원(강원)은 공격 전개의 가교 역할을 했다. 4도움은 FIFA 주관 대회에서 지난 2019년 이강인과 함께 한국 선수 최다 기록이다. 특히 이승원은 도움 4개를 모두 세트피스(코너킥 3개, 프리킥 1개)로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최초다. 5일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나이지리아와 8강전 연장 전반 5분 나온 결승골도 이승원의 발끝에서 시작했다. 이승원은 연장 전반 5분 낮고 빠른 왼쪽 코너킥을 올렸고 최석현(단국대)이 문전에 쇄도하면서 헤더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날 한국의 유일한 유효 슈팅은 그대로 승부를 결정짓는 골로 이어졌다.
공격수 이영준(김천)과 미드필더 배준호(대전)의 활약도 대회 내내 빛난다.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토트넘)을 롤모델로 꼽은 이영준은 190㎝의 큰 키를 바탕으로 케인처럼 유기적인 패스와 뛰어난 결정력까지 갖춘 전천후 공격수다. 이영준은 에콰도르와 16강전에서 배준호의 크로스를 가슴 트래핑으로 방향만 바꾼 뒤 멋진 발리슛으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박지성(전북 디렉터)의 골을 연상시키는 선제골이었다. 등번호 10번을 단 ‘에이스’ 배준호는 에콰도르전 1골 1도움을 포함해 대회 내내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골 넣는 수비수 최석현은 ‘영웅’으로 떠올랐다. 최석현은 16강전에 이어 2경기 연속 헤더로 결승골을 집어넣었다. 그야말로 ‘황금 이마’다. 178cm 센터백으로 큰 키는 아니지만 가공할 만한 점프력을 선보였다. 최석현은 이날 경기 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다”며 “오늘 경기가 제일 고비였지만 체력이 많이 떨어진 가운데 승리를 따내서 기쁘다. (4강 상대인) 이탈리아전도 잘 준비해서 좋은 경기를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문장’ 골키퍼 김준홍과 육탄방어를 펼치는 김지수(성남), 배서준(대전), 박창우(전북) 등 후방을 책임지는 수비진도 빼놓을 수 없다. 대회 첫 경기 프랑스전에서 선방 쇼를 펼치며 승리의 일등공신이었던 김준홍은 팬들 사이에서 벌써 '빛준홍'이란 애칭이 생겼다. 그는 이날도 나이지리아의 유효 슈팅 3개를 모두 선방했다. 수비진도 나이지리아에게 슈팅을 22개 허용하면서도 유효 슈팅은 3개만 내주면서 상대 찬스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김은중 감독도 대회 전 주목을 덜 받았던 점을 언급하며 선수들을 치켜세웠다. 그는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고 우리 선수들에 대해 잘 몰라서 속상했는데 나를 포함한 코칭 스태프를 믿고 따라와 준 선수들이 고맙다. 최고로 잠재력을 끌어냈다”며 “정말 대단하고 앞으로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될 것 같아 고맙고 대단하다”고 말했다.
한준희 해설위원(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선수들의 이름값은 4년 전만 못하지만, 팀 전체를 스타로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지에 선수들이 잘 부응했다”며 “이전 대회의 성공으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도 결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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