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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법보다 中 헌법 우선’ 규정…美·서방에 보복 준비 [中, 대외관계·反간첩법 시행]

입력 : 2023-06-30 06:00:00 수정 : 2023-06-29 22: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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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1인체제 공고화 가속

反국익 행위, 법적책임 추궁 강조
‘사드’ 같은 대외 보복성 조치에도
자국 논리 앞세워 공식화 가능성

외국 정부·민간 상대로 압박 강화
美·中 양측 제재 땐 ‘새우등 터질라’

국내 기업·교민 ‘비상’

“中 대외관계법, 韓 무역수지에 악영향
초격차 기술력·공급망 다변화가 살 길”

미국과 전략경쟁 중인 중국이 미·서방의 제재와 견제에 맞서기 위한 법적 제도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국법을 중국 제재에 활용해 왔던 미국과 서방처럼 중국도 국내법으로 외국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3연임 뒤 대외적으로 ‘높은 수준의 개방’을 천명한 중국이 약속과 달리 시 주석 1인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외국 정부 및 민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데 치중하는 꼴이라 대외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29일 인민일보 등에 따르면 제14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전날 제3차 회의에서 통과시킨 대외관계법 취지는 “대외관계를 발전시키고 국가 주권, 안보, 발전 이익을 수호하며 인민의 이익을 수호·발전시키며,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건설하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을 촉진하며, 인류 운명 공동체 건설을 추동하기 위한” 것이다.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이날 인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 법에 대해 “신시대 중국 특색의 대국 외교를 법치 사상과 방법론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려 중국식 현대화로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미사여구로 치장됐지만, 법 조항을 뜯어보면 실상은 반대다. 대외관계법을 관통하는 핵심은 중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의한 타국에 대한 제재 근거 확립이다. 자국 주권과 안보에 대한 반격 권리를 명시한 33조 외에 6조는 “국가기관과 무장 역량(군, 무장경찰 등), 각 정당과 인민단체, 기업과 사업조직, 기타 사회조직 및 공민(국민)은 대외 교류 협력에서 국가의 주권, 안전, 존엄성, 명예, 이익을 수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8조는 국익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을 강조했다. 33조는 “국무원(중국 최고 행정기관)과 그 부서는 필요한 행정 규정과 부서 규칙을 제정하고 관련 대응 조치와 제한 조치를 결정하고 구현한다”며 실행 의무까지 마련했다. 모두가 미·중 전략경쟁 국면에서 중국의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의도다.

30조와 31조도 우려된다. 각각 “국가가 체결하거나 참여하는 조약 및 협정은 헌법에 저촉되어서는 안 된다”와 “조약 및 협정의 이행 및 적용은 국가의 주권, 안보 및 사회적 공익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다. 이에 대해 왕장위 홍콩 성시(도시)대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중국 헌법이 모든 것에 앞선다는 헌법의 우위 원칙을 매우 분명하게 밝힌 것으로, 국제법이 중국 헌법보다 상위에 위치할 수 없게 됐다”며 “이 부분이 명확하게 법에 규정된 것은 처음”이라고 해석했다. 러시아가 국내법(헌법)의 국제법 우위 원칙을 채택한 대표적인 국가다.

 

중국은 2016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지만 남중국해 90%를 차지하는 ‘U’자 형태의 9개선 ‘남해 9단선(南海九段線)’에 대해 영유권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외관계법으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자국 중심 억지’ 주장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이 자주 쓰는 ‘중화(中華)’라는 말 자체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28일 베이징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건물에서 열린 상장 진급식에서 군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진급한 장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베이징=EPA연합뉴스

국제법적 문제가 아니더라도 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계기로 비공식적으로 시행해 온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과 같은 대외 보복성 조치도 자국 중심 논리를 앞세워 공식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이 중국 기업·개인을 상대로 한 제재에 맞서 반(反)외국제재법을 근거로 맞불 제재를 시행해 왔다. 그런 터에 이번에 대외관계법을 제정함에 따라 미국 등 갈등 관계 국가에 취할 맞대응 조치의 법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취할 수 있는 조치를 더 다양화할 수 있게 됐다. 이 경우 중국과 무역하거나 현지에 사업장 등을 운영 중인 미국, 한국, 일본 등의 기업이 미·중 양측의 제재를 의식해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같은 날 시행되는 개정 반간첩법(방첩법)은 더 황당한 경우다. 중국 방첩법에 따르면 ‘기타 국가 안보와 이익과 관련된 문건, 데이터, 자료, 물품’을 보호 대상에 규정함으로써 유출 시 처벌받는 정보의 범위가 대폭 넓어지게 됐다. 법에 따라 ‘비밀’로 분류된 정보가 아니더라도 ‘안보’나 ‘국익’과 관련 있다고 사법 당국이 규정할 경우 처벌될 수 있다. 또 ‘간첩 조직과 대리인에게 빌붙는 행위’도 간첩 행위에 포함됨으로써 비밀을 넘기는 구체적인 행위가 적발되지 않더라도, 교류해 온 외국 기관 등이 ‘간첩’ 또는 ‘간첩 대리인’으로 규정되면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와 기율감찰위원회는 최근 방첩법 시행을 앞두고 군대 간부들의 민간인 접촉 통제를 강화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中 국가기관 인근서 사진촬영 주의… 체포·연행 땐 ‘영사접견’ 적극 요청”

 

중국이 ‘맞불 제재’의 법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대외관계법과 개정 반간첩법(방첩법)을 꺼내 들면서 중국 교민들과 국내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29일 주중 한국 대사관 등에 따르면 다음달 1일 반간첩법 시행으로 중국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졌다. 대사관은 안전 공지를 통해 중국 교민 및 관광객 유의사항으로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 관련 자료(지도·사진·통계 등)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저장하는 행위 △군사시설·국가기관·방산업체 등 보안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의 촬영 행위 △시위 현장 방문 및 시위대 직접 촬영 행위 △중국인에 대한 포교, 야외 선교 등 중국 정부가 금지하는 종교 활동 등을 안내했다. 또 위급 상황 발생 시 중국 내 한국 공관 연락처로 연락하고, 중국 당국에 체포 또는 연행될 경우 한국 공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영사접견’을 적극 요청하라고 권고했다.

주중 한국대사관. 연합뉴스

국내 기업들은 중국 대외관계법에 대비해 초격차 기술 확보, 공급망 다변화 등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 속 기존 생존 전략을 고도화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방안이다.

 

업계에선 중국의 대외관계법 제정으로 기업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대외관계법이 산업계에 미칠 구체적인 영향을 예단할 순 없지만, 미·중 갈등이 심해질수록 기업의 중국 내 사업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대외관계법은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우리나라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전체 무역적자 중 대중국 무역적자의 비중이 최근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날 발표한 ‘대중국 수출부진 현황 및 적자기조 장기화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대중국 무역수지는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대중국 무역적자 규모는 최근 3분기 사이 폭증했다. 올해 1분기 대중국 무역적자는 77억8000만달러로, 지난해 3분기(3억3000만달러)의 23.6배 수준이다.

전체 무역수지에서 대중국 무역수지 기여도 또한 급격하게 올랐다. 지난해 3분기 대중국 무역적자 기여도는 1.8%에 불과했지만, 4분기에 14.1%로 증가했고 올해 1분기엔 34.4%에 달했다. 전체 무역적자 225억9000만달러 중 77억8000만달러가 중국에서 비롯했다.

 

한경연은 반도체 등 핵심 분야에 대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중국 무역적자 흐름이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중국 수출 품목이 전기·전자, 철강 등에 편중된 가운데 중국이 해당 산업에서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크게 줄였고, 그 결과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수 전경련 아태협력팀장은 대외관계법 대응 전략에 “결국은 기술력”이라고 답했다. 이 팀장은 통화에서 “아무리 외교 관계가 안 좋아도 기업이 핵심 기술력으로 시장지배력을 유지한다면 함부로 건들 수 없다”며 “정부 차원에서 외교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전까진 기술력 확보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팀장은 미·중 패권 경쟁의 최대 격전지인 글로벌 공급망 분야에서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중국의 원자재 의존도가 높으므로 대외관계법 제정으로 중국의 보복 제재가 확대될수록 기업은 곤란해진다”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작은 새로운 공급망을 개발하고 같은 상황에 놓인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이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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