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 가는 길에 죽여줄게.”
지난달 28일 오전 9시16분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 혼자 있던 외국인 A씨는 이상한 협박 문자를 받았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알게 된 한국인 친구 B씨가 보낸 것이었다. 불안해진 A씨는 112신고를 통해 “협박 문자 때문에 무서워서 호텔을 못 나가겠다. 호텔만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호텔 문 앞에 문자를 보낸 이가 있을까봐 신고자가 불안해했다”며 “공항으로 갈 수 있는 광화문역까지 순찰차를 태워주고 사건을 종결했다”고 전했다.
경찰청은 3일부터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112신고 통역을 돕는 ‘외국인 112신고 통역서비스’를 실시한다고 2일 밝혔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 영어와 중국어 전문 통역요원을 각 2명씩 배치해 외국인의 112신고를 실시간으로 대응하도록 했다.
경찰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발생한 이태원 참사 과정에서 외국인의 112신고 한계가 확인된 데 따른 것이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한 외국인은 총 26명이었지만 참사 발생 직전까지 경찰에 접수된 112신고 93건 중 외국인이 한 신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외국인은 112신고를 하더라도 경찰과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신고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원에 따르면 외국인 여성 유학생 성폭력 피해자 10명 중 7명은 공식적인 지원체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신고 방법을 모르거나’(38.8%), ‘신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34.5%)는 이유에서였다.
경찰대학 연구 보고서(농촌 여성이주노동자 성폭력 피해 관련 경찰의 대응 방안 2018)에서도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이주노동자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한국말을 못 해서’(68.4%), ‘방법을 몰라서’(52.6%) 순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따르면 그동안 외국인의 112신고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외국인이 한국관광공사가 제공하는 통역을 거쳐 112신고를 할 경우 평균 6분 13초가 소요됐다. 앞으로는 전문 외국인 통역요원이 112상황실에 배치돼 실시간으로 외국인의 112신고 통역을 전담하게 된다. 지난 6월 한 달간 서울지역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 외국인 112신고 접수 소요시간은 평균 3분 52초로 기존보다 2분 21초 단축됐다.
외국인으로부터 걸려오는 112신고전화는 지난해 월평균 363건이었으나 올 들어 월평균 500건으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고, 월별 추이로도 증가 추세다. 언어별로는 영어(51.7%), 중국어(34.5%), 일본어(3.6%), 러시아어(3.3%), 베트남어(3.1%) 순으로 나타났다. 신고 유형별로는 상담문의(23.6%)가 가장 많았고, 위험방지(6.3%), 폭력(5.4%), 분실 습득(4.3%), 교통사고(3.7%), 가정폭력(2.6%)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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