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거래량 1년새 반토막… 일감 끊겨
무질서한 중개행위 여파 직업군 신뢰 ↓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서 매물 탐색 늘어
공인중개사 개업 규모 3개월 연속 감소
중개인 사고 이력 공개법 등 국회 계류
윤리강령 제정 등 자정 노력 시급 지적
경기 고양시에서 20년 넘게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해 온 홍모씨는 최근 사무실을 정리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원룸은 물론, 토지와 단독주택 중개에 두각을 나타내며 순수 중개수수료 수입만으로 억대 연봉을 달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2021년부터 수입이 급격히 줄면서 지난해부터는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매출이 급감했다.
홍씨는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전반적인 일감 자체가 줄어든 데다 단독주택이나 토지 거래는 매수자가 한 달에 1건도 안 나타났다”면서 “지난해부터 아내가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배달 일을 해 왔는데, 한번은 나처럼 투잡을 뛰는 같은 동네 중개사를 만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2020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30대 김모씨는 지난해부터 개업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당초 고향인 대구에서 개업할 생각이었지만, 중개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판단에서 다른 업종에 도전하기로 했다.
김씨는 “군대에서부터 열심히 노력해 어렵게 자격증을 땄지만, 주변에서 개업을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최근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공인중개사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국민 자격증’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고금리 기조와 경기 둔화 우려에 부동산 거래량이 줄어든 가운데 온라인을 통한 각종 부동산 플랫폼을 이용한 매물 찾기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공인중개사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졌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수천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전세사기 문제가 수면 위에 오르면서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도 함께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절벽에 전세사기가 결정타
10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개업 공인중개사 규모는 올해 들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2월 11만7857명이었던 개업 공인중개사수는 지난 5월 11만7431명으로 3개월 연속 줄었다. 중개사무소를 신규 개설하는 숫자보다 기존 사무소를 휴·폐업하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이다.
공인중개사가 중개업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입 감소다. 지난해 전국 주택 거래량은 50만8790건으로 2021년(101만5171건)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국토교통부가 주택 거래량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전세자금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임대차계약 중 전세보다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적은 월세의 비중이 증가한 것도 공인중개사 입장에선 악재로 작용했다. 게다가 중개수수료율 상한선은 주택 거래가 집중됐던 2021년 9월부터 인하되면서 공인중개사가 체감하는 수익 감소율이 훨씬 더 커졌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피해자를 양산한 전세사기의 여파가 공인중개사 직업군 전반에 대한 신뢰도를 끌어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달 경찰청이 발표한 전세사기 특별단속 중간결과,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2996명(피해액 4599억원)이 발생한 가운데 전세사기에 가담한 2895명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공인중개사가 486명으로 16.8%를 차지했다.
업계에서는 약 12만명에 달하는 개업 공인중개사 중 극소수가 연루됐다는 이유로 공인중개사 전체를 범죄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공인중개사 직업윤리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전세사기를 계기로 부동산 중개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 필요성을 인정해 5월부터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학계와 공인중개사단체 등도 참여해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익이 나빠지니까 일부 소수의 공인중개사가 검은 유혹에 빠지는 경우가 생겨나게 되고, 그런 사례가 모여서 다시 부동산 중개시장 전체를 어지럽히고 공인중개사의 신뢰도를 떨어뜨려서 다시 수익 감소를 심화하게 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과 자정 노력 시급
국회는 지난 3월 전세사기 방지 차원에서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공인중개사가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 유예 기간이 끝나도 향후 2년간 활동할 수 없도록 ‘결격 기간’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를 비롯한 범죄에 연루됐을 때 사고 이력을 공개하거나 피해 금액을 몰수하고 추징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 등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공인중개사의 고의나 과실로 인해 손해가 생겼을 때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공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인중개사는 손해배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해 공제증권에 가입해야 하는데, 공제 한도는 1건당 2억원이다. 서울의 평균 주택 전세보증금이 6억원을 훌쩍 넘기는 상황에서 현행 한도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중개업계에서는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공인중개사가 부동산 시장 질서를 유지하고 고객의 재산을 지킬 의무가 있는 만큼 불법 행위를 내부적으로 단속하고 대응할 권한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에는 중개사협회를 법정단체로 지정하고, 협회에 단속·신고 권한 등을 부여하는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개정안도 제출돼 있다.
박명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정책특보는 “대한변호사협회는 의뢰인의 재판에 불출석해서 패소하게 한 변호사에 대해 최근 자격정지 1년을 의결해 통보했다”며 “몇몇의 일탈로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공인중개사들이 현장에서 불법을 확인하고 방출시킬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인중개사의 권리 강화도 중요하지만,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자정적 노력이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학환 숭실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공인중개사가 전세사기 등 범죄를 저지르거나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는지 여부는 시세를 꿰고 있는 인근 지역의 공인중개사가 가장 잘 알 수 있다”며 “만시지탄이지만 공인중개사 내부 윤리강령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 실천해야 하고, 중개사무소 개설 전에 일정 기간의 수습 기간을 의무화하는 등 실무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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