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잡힌 듯했던 물가가 다시 들썩거린다. 역대급 폭우와 폭염 탓에 농수산물 피해가 속출해 신선식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흑해곡물수출협정 파기가 세계곡물 파동으로 이어질 조짐이고 유가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21개월 만에 2%대 상승에 그친 소비자물가에 비상이 걸린 형국이다.
발등의 불은 다락같이 오른 밥상물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보름간 이어진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농지는 3만5393㏊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2배에 달한다. 무더위 탓에 들썩이던 농산물값은 이 여파로 폭등세로 돌변했다. 21일 도매가 기준으로 청상추 가격은 4주 전보다 398.7%나 급등했고 적상추와 시금치의 상승률도 343.8%, 214.1%였다. 수박 등 과일과 삼겹살 등 육류 가격 역시 덩달아 뛰고 있다. 호우와 폭염이 가실 줄 모르는 데다 추석(9월29일) 연휴까지 앞두고 있어 3분기 밥상물가는 더 요동칠 공산이 크다.
대외 악재도 꼬리를 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보장했던 협정을 중단한 것도 모자라 곡물 거점지역까지 포격했다. 이 바람에 국제 밀과 옥수수 가격이 뛰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재기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국제유가도 한 달 새 11% 이상 오르며 배럴당 8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제에너지포럼(IEF)은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로 올 하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로 오를 가능성을 경고했다. 외풍에 취약한 한국경제가 재차 고물가의 늪에 빠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농산물·석유류를 뺀 근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3.5%로 높고 다음 달부터 순차적으로 서울 버스와 지하철 요금 인상도 예고돼 있다.
기획재정부는 물가 둔화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 했지만 안이한 인식이다. 물가 앙등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경각심을 갖고 물가 고삐를 죄어야 할 때다. 정부는 우선 농·축·수산물 비축물량을 방출해 수급 안정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국제곡물가 변동을 틈탄 담합이나 편법 가격 인상에도 강력 대응해야 할 것이다. 파급력이 큰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은 시기를 분산하거나 인상 폭을 줄여 가계 고통을 덜어주기 바란다. 폭우 등 이상기후가 일상화하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긴 안목으로 농산물 비축제도를 다양화하고 필요하다면 금리 인상 등 거시적 대응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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