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 이어 성년후견인의 권한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에 앞서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명시적인 의사 표시를 하면 형사소추를 할 수 없도록 한 범죄를 가리키는데, 통상 법조문에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과실치상죄(형법 제266조 제2항)와 협박죄(〃 제283조 제3항), 명예훼손죄 및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죄(〃 제312조 제2항)가 해당합니다.
최근 반의사불벌죄와 관련하여 ‘의사능력을 상실한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피해자를 대신하여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거나 처벌 희망 의사 표시를 철회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어 소개합니다(2023. 7. 17. 선고 2021도11126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 사실관계
A씨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전방주시 의무를 게을리해 피해자 B씨를 들이받고 뇌 손상 등의 중상해를 입힘. 이에 검사는 A씨를 반의사불벌죄인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죄로 기소하였음. B씨는 이 사고로 ‘식물인간’ 진단을 받고 피해자의 부인인 C씨는 가정법원을 통해 B씨의 성년후견인으로 선임됨. 가정법원은 성년후견인의 법정 대리권 범위에 ‘소송행위’를 포함시키고 그 대리권 행사 시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결정함.
C씨는 합의금 4000만원을 받고 A씨에 대한 형사 사건 1심 재판부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서면을 제출함.
○ 소송의 경과
1, 2심 재판부는 A씨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금고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함. A씨는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상 치상죄는 반의사불벌죄인데 B씨의 성년후견인이 처벌 불원 의사를 밝혔으므로 ‘공소 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면서 대법원에 상고함.
◎ 대법원의 결론
대법원은 형사소송 절차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으면 소송행위의 법정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의사능력이 없더라도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반의사불벌죄에 관해 피해자를 대리하거나 독립하여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면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음.
◉ 이경진 변호사의 Tip
형사소송 절차에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점, 반의사불벌죄의 취지 등에 비추어 볼 때 소송행위의 법정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찬성합니다. 특히 처벌 불원 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기한 것이어야 하는데, 성년후견인의 대리에 의한 처벌 불원 의사 표시가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법원의 결론에 따르더라도 성년후견인이 의사능력 없는 피해자를 대리해서 한 형사 합의는 양형 요소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이경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jin.lee@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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