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총지출의 증가율을 2.8%까지 축소한 건 올해처럼 내년에도 세수 상황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내년 국세수입은 지난해 정부가 중기재정전망에서 예상했던 수준보다 51조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세수가 크게 감소하는 가운데 정부는 재정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총지출을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 지출 축소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예고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아낀 재원으로 꼭 필요한 곳에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당장 기술개발(R&D) 예산이 5조원 이상 깎였고, 취약계층 부문의 예산 증가율은 올해보다 낮아졌다. 그럼에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나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재정 집행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국세수입은 올해 본예산상 국세수입(400조5000억원)보다 33조1000억원 감소한 367조4000억원으로 전망됐다. 국세수입이 전년 대비 33조원 이상 감소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과 코로나19가 닥쳤던 2021년에도 국세수입 감소폭은 각각 2조8000억원, 8조원에 그쳤다. 세목별로 보면 부동산 시장 위축 등으로 내년 소득세가 6조원 감소하고, 법인세는 올해 기업실적 둔화와 법인세 감면 효과 등으로 27조3000억원 줄 것으로 예측됐다. 부가가치세도 1조8000억원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이러한 역대급 세수 감소는 우리 재정에 부담을 주는 동시에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다. 우선 윤석열정부 출범부터 강조됐던 건전재정 기조가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총지출 증가율을 역대급으로 낮췄다고는 강조하지만 세수 감소로 총수입이 아예 줄면서 내년도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92조원(국내총생산(GDP)의 -3.9%)까지 악화돼, 적자폭이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재정준칙 도입을 강조하며 내세웠던 ‘관리재정수지 적자 GDP의 3% 이내 관리’라는 기준도 지킬 수 없게 됐다. 역대급 세수 결손에 정부가 세웠던 원칙마저 허물어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관리재정수지 -4%면 확장재정”이라면서 “정부가 재정운용 실패한 것을 긴축한다는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내년 한국 성장률을 1.9%로 내다보는 등 경기 불확실성이 큰데도 재정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총지출 축소로 국가경쟁력 확보의 핵심 부문인 R&D 분야가 직격탄을 맞았다는 점이다. 예산안에 따르면 산업중소기업 및 에너지 분야 예산이 올해 7조5714억원에서 내년 6조2972억원으로 깎이는 등 R&D 분야 예산이 전체적으로 31조778억원에서 내년 25조9152억원으로 16.6% 감축됐다. 2010년 이후 R&D 예산이 전년 대비 줄어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확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한국이 선진국 문턱에 있는데 선진국 중에 기초과학 연구를 소홀히 하는 나라는 없다”면서 “정부가 잠재력에 투자는 안하고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기술에만 투자하겠다는 건데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깎아먹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내 인재도 유출될 것이 뻔하고, 우리의 과학연구는 뒤처지게 될 것”이라면서 “다음 해를 위해 뿌릴 씨앗으로 밥을 지어먹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예산이 축소되는 복지 분야도 눈에 띈다. 장애인 지원이 포함된 취약계층 부문은 올해 증가율이 8.9%였지만 내년도에는 4.8%로 줄었고, 사회복지일반 부문도 올해 6.8%에서 내년 3.6%로 증가율이 줄었다.
그럼에도 SOC 예산은 크게 늘어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 성격의 지출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SOC 예산은 올해 24조9881억원에서 내년 26조1349억원으로 4.6% 늘었다. 올해 SOC 예산이 지난해 대비 10.7% 줄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예산이 급증한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SOC 예산은 사업 주기가 있다”면서 “GTX-A·B·C 등 최근에 대규모로 추진되는 사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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