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당한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담임교사 교체를 요구한 학부모 행위가 교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어제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어머니 A씨가 학교장을 상대로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로 돌려보냈다. 수업 중 생수 페트병을 갖고 놀다가 제재를 받은 학생의 학부모가 지속적으로 학교를 찾아가 항의하고 담임교사 교체를 요구한 행위를 ‘반복적이고 부당한 간섭’으로 볼 수 없다는 원심 판단을 깬 것이다.
이번 판결은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돼야 함을 밝힌 것이라서 의미가 매우 크다. 대법원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을 규정한 헌법 31조를 근거로 “교사가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영역인 학생에 대한 교육 과정에서 한 판단과 교육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국가와 지자체, 공공단체는 물론이고 학생이나 보호자가 이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권 보호를 위한 법리적 토대를 마련한 판결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교육현장에서 학생 인권 보호만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교사 권위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정당한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하고 법적 분쟁과 소송에 휘말리기 일쑤였다. 두 달 전 서이초 교사 사망을 계기로 터져나온 교사들 울분이 쉬 사그라들지 않는 것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국회의 ‘교권보호 4법(교원지위법,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개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으나 입법은 더디기만 하다. 그새 서울 양천구, 전북 군산, 경기 용인, 대전 유성구, 충북 청주에서 교사 5명이 또 세상을 등졌다.
대전의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들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감하면서 사적 제재까지 횡행해 우려가 크다. 집요하게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학부모의 음식점에 ‘별점 테러’와 ‘음식물 테러’가 가해지는가 하면 가해자 신상을 폭로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려지는 지경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교권 보호를 향한 사법부의 큰 걸음이 시작된 만큼 앞으로 법과 제도를 촘촘히 손질해 교육 정상화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법원은 계류 중인 수많은 유사 사건에서 보다 균형 잡힌 판결을 내리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학부모들도 지나친 보호와 간섭이 자녀뿐 아니라 공교육까지 망칠 수 있음을 명심하고 자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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