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고 싶었던 감독 역할…막상 해보니 배우역이 탐나
비애 표정이 연기 아니라 뒤에 숨은 얼굴이 진짜 연기
거미집은 욕망의 영화… 내 욕망은 새로운 영화와 연기”
“영화 속 역할이지만 (감독을) 좀 하고 싶었어요. 30년 가까이 카메라 앞에만 있다가 뒤에서 구경하면 즐거움도 있을 거 같아서요. 배우들은 막 고생하는데, 편안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은근히 기대도 하고 그랬는데 (막상 감독을 하니) 영화 속 영화의 배우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한국의 대표 배우인 송강호가 이번엔 김지운 감독의 영화 ‘거미집’에서 동명의 영화를 찍는 김열 감독 역을 맡았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거미집’은 일류 감독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치정극을 찍는 삼류 취급을 받는 김열 감독이 이미 찍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만 바꾸면 걸작이 탄생할 것이라 믿고, 재촬영을 강행하면서 벌어지는 난장판을 그린다.
‘거미집’에서 감독이 된 대한민국 대표 배우 송강호를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감독 역할을 하면서도 배우로서의 연기에 욕심을 내는 그는 천생 배우다. 그는 영화 속 감독의 역할에 만족한다며 자신이 영화를 찍는 진짜 감독이 되고 싶은 욕심은 “전혀 없다”고 했다.
“재능도 있어야 하고 비전도 있어야 하는데 저는 배우 하기도 벅찬 인물이라는 생각이 늘 있고, 훌륭하신 감독들이 많이 계시니까 그런 일은 감독님들한테 맡기고.”
그는 “뭔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보이고 싶은데 말처럼 되는 건 아니다. 그런 고통은 모든 감독이 다 가진 고통일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니 쉬운 직업이 아니고 쉬운 위치가 아니라는 걸 절절히 느꼈다”고 했다.
감독이 아닌 배우로 남겠다는 그는 감독 역할을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능청스러움으로 능숙하게 소화해 낸다.
송강호는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믿고 찾는 배우다. 김지운 감독과 호흡을 맞춘 것만도 이번이 다섯 번째다. 왜 그는 감독들의 총애를 받고, 관객들도 그를 사랑하는 걸까.
“(김지운 감독이) 꺼림칙하다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25년도 더 전에 제 연극을 처음 봤을 때, 뭔가 ‘꺼림칙하다’고. 연기를 잘하고 못 하고가 아니고 뭔가 깨끗한 느낌이 아니라, 자기(감독) 머릿속에 있는 모습이 아니라 다르게 표현을 하니까, ‘뭐지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하지’라는 꺼림칙함. 그런 지점에서 두 사람의 (인연이) 스타트가 된 거 같아요. 25년간 5편을 찍으면서 한 사람은 꺼림칙함을 기대하고, 한 사람은 꺼림칙함을 더 꺼림칙하게 표현하고 싶고, 그런 만남의 연속이 아니었나.”
괴이한 분석인데, 어쩐지 납득이 간다. 송강호를 찍는 감독들은 영화의 마지막에 클로즈업된 그의 표정을 담곤 한다. 그 표정이 어찌나 미묘한지 속내를 알기가 어렵다. ‘거미집’의 김열은 마지막에 자신이 만든 영화를 보며 그 특유의 표정을 짓는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다.
“비애만 보이면 그냥 비애잖아요. 그게 관객들 가슴 속에 남으려면 그 뒤에 있는 얼굴이 필요한데, 그게 이제 흔히들 ‘페이소스’(정서적 호소력)라는 어떤 단어를 쓰는데, 그게 (연기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지 않나. 비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비애 뒤에 있는 얼굴, 그게 연기인 것 같기도 하고.”
송강호는 ‘거미집’이 “인간의 욕망을 다룬 지독한 우화”이며 “인간의 욕망은 마침표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영화를 보면 김열이라는 감독이 자기가 꿈속에 그리던, 자기만의 창의력을 발휘해 대표작을 만들고 싶은 그런 욕망에서 이 영화가 시작되는 거죠. 그것 때문에 배우들, 제작자들, 그들의 어떤 개인의 작은 욕망과 끊임없는 마찰이 일어나죠. 그러다가 이제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 욕망의 끝을 아주 기괴하게 끝을 내는데, 그걸 바라보는 김열의 표정은 만족도 아니고 비 만족도 아닌, 오묘한 지점에서 끝나는 게 이 영화의 포인트인 것 같아요.”
배우 개인으로서 송강호의 욕망은 “결과를 떠나 새롭게 시도되는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는 그의 욕망과 일치한다.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12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국적인 대사의 향연이 외국 관객에게 완벽한 의미로 전달되기 어려움에도 이처럼 좋은 반응을 얻은 것 역시, 새로움 때문이라고 송강호는 해석했다.
그는 침체기에 빠져든 한국 영화의 희망을 ‘거미집’에서 찾았다.
“거미집 같은 영화가 돌파구가 될 것 같아요. (요즘 시대의) 다양한 콘텐츠를 이기려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 영화관에서 영화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도전되고, 좌절되고 실패해도 계속 도전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어떤 그것이 저는 거미집 같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가 다양해지고 영화만이 가진 매력이 있고, 그러다 보면 제2의 제3의 르네상스를 다시 맞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 송강호는 집행부 사퇴로 위기에 처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운영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 말을 아끼는 대신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이런 시기를 지나 좀 더 젊고 활력 있고, 정말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