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부가 파킨슨 진단을 받았다. 발걸음이 지칫거리고 손을 떠는 증상들이 있다더니 역시나 파킨슨이었다. 일찍 진단이라도 받았으면 진행을 늦출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 가지 일들이 휘몰아치듯 들이치는 바람에 최종진단이 늦었던 모양이다. 처음 검사를 받았을 때는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그 말에 방심하고 있다가 늦어진 거라고, 언니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안타깝게도 그 사이에 진행이 많이 된 모양이었다.
파킨슨이라니.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구나. 평생 공부만 하고 산 사람인데 병은 차별이 없구나, 였다.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린애 같은지 안다. 병이 어디 남녀노소 귀천을 따져 찾아오는 것이던가. 언젠가 지방에 일이 있어 내려가는 길에 한 중노인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탄 버스가 휴게소로 들어서고,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헌데 내 앞에 선 할머니가 버스 통로에서 멈춰 서서는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이가 빨리 내리기를 기다렸다. 헌데 그이는 한두 걸음 내딛고는 다시 멈춰서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내딛는 걸음도 어딘지 어색하고 불편하고 힘겹기만 했다. 뭐지? 왜 그러지? 왈칵, 짜증이 이는 것을 참으며 나는 그이를 살폈고, 이내 파킨슨 환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무심히 내딛는 한 걸음이 그에게는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힘겨운 동작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이가 얼마간 애잔했을 것이다.
이제 형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고, 테니스와 골프는 꽤 수준급으로 알려졌는데 이제 모두 지나간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런 형부였으니 병으로 인한 심리적 타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이제 조금 지나면 형부의 모든 일상은 타인의 손을 필요로 할 것이다. 씻는 일과 먹는 일,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까지.
당사자인 형부는 물론이고 감당해야 할 몫이 늘어난 언니 또한 안타깝고 안쓰럽다. 몇 달 전, 보이스피싱으로 수억원의 거액을 날린 형부의 뒷설거지를 하느라 지금도 힘든데 이런 일까지 생겼으니 언니가 견뎌내야 할 그 고단함은 또 얼마나 클까. 아무래도 건강이 좋지 않은 언니가 감당해내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다행히 독실한 크리스천인 언니는 종교의 힘으로 이 힘든 시기를 잘 보내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이렇게나마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까지 했다.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언니가 잎을 다 떨구고 묵묵히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는 나목 같다. 물에 빠졌을 때 허리와 가슴을 펴고 편히 눕듯 팔을 벌리고 있으면 뜨고, 겁에 질려 허우적거리면 더 깊이 가라앉는다.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아무쪼록 언니가 삶의 기운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모든 형편이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니를 위해 기도하고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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