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이 갈수록 태산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실질적인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올해 80조원에서 내년 92조원으로 늘어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3.7%에서 3.9%로 높아진다. 이 추세라면 정부가 스스로 정한 목표치인 GDP의 3% 이내(재정준칙한도)를 5년 내리 어기게 된다. 국가부채도 연말 1100조원을 돌파하는 데 이어 내년 1200조원 안팎으로 불어난다. 윤석열정부는 문재인정부가 망친 국가 재정을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했지만 별반 나아진 게 없다.
나라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 수출과 내수의 동반침체로 세금이 애초 예상보다 덜 걷히는 탓이다. 올해 세수 부족액이 60조원에 육박한다. 엉터리 세수 추계도 문제지만 정부가 적자 국채 발행을 피하는 땜질식 대책만 남발하니 걱정이 크다. 기재부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세계잉여금, 불용예산으로 세수 부족분을 메우려 하는데 돌려막기 꼼수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외환위기까지 겪은 마당에 환율방파제인 외평기금까지 허무는 건 위험하다. 가뜩이나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져 현재의 외환보유액만으로 환율방어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더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세수펑크를 막기 위해서는 세수 기반을 확충하고 재정지출 누수를 막는 게 정공법이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재정 만능주의와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딴판이다. 예산안에는 병사월급부터 0세 아동 부모급여, 노인 기초연금 인상 등에 이르기까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사업이 수두룩하다. 지역민원 사업이 많은 사회간접자본(SOC)예산도 5% 가까이 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술 더 떠 35조원의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기초연금 40만원 인상까지 주장하는 지경이다. 정치권은 미래세대에 빚 폭탄을 떠넘기는 포퓰리즘 경쟁을 멈춰야 한다. 정부도 건전·긴축재정을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강력한 의지로 실천해야 한다.
이제 재정준칙 법제화는 더 미뤄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다. 재정준칙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건 2020년 9월이지만 3년째 소관 상임위 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튀르키예와 한국뿐이고 전 세계 105개국이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달 초 준칙 법제화를 재차 권고했지만 정치권은 귓등으로 흘린다. 여야의 반성과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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