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직 당직자만 사퇴는 미봉책
尹 대통령 유체이탈 화법도 논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여권의 쇄신 논의가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 패배 이틀 뒤인 13일 “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개선책을 도출할 것을 주문했다. 이게 선거 패배와 관련해 언론에 공개된 윤 대통령의 첫 반응이다.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 아닐 수 없다.
먼저 ‘패배의 교훈’을 찾아야 하는 것은 윤 대통령이고, 쇄신해야 하는 쪽도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다. 선거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유죄 확정 3개월 만에 사면하고 공천해 한낱 기초단체장 보궐선거를 ‘정권 심판’의 무대로 키운 것은 윤 대통령이다. 지명도와 인지도가 낮은 김기현 대표를 우격다짐 끝에 집권당 수장으로 끌어올린 것도 윤 대통령이다. 그리고 국민의힘이 당초 ‘무공천’을 하려던 이번 선거에 떠밀리듯 김 전 구청장을 공천하는 일이 왜 벌어졌나.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만 꾸짖듯이 쇄신하라고 한다.
국민의힘도 어처구니가 없다. 14일에서야 내놓은 쇄신안이 임명직 당직자 전원 사퇴다. 김 대표, 윤재옥 원내대표, 선출직 최고위원단(김병민 조수진 김가람 장예찬)은 제외됐다. 선거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지도부는 모두 빠진 ‘꼬리 자르기’다. 당력을 집중한 선거의 패배 책임을 임명직 당직자에게만 묻는다는 것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다. 윤 대통령과 함께 이번 선거 패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김 대표는 사퇴하는 게 맞다. 최소한 내년 총선 불출마라도 선언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어제 저녁에서야 의원총회를 열었으나 김 대표 체제를 유지하며 쇄신하기로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의총에서는 서병수·김웅·최재형 의원 등이 김 대표 사퇴를 촉구했고, “당이 대통령실을 향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김 대표는 “총선에서 패배하면 정계 은퇴로 책임지겠다”며 당 혁신기구 출범· 통합형 당직 개편을 약속했다. 그러나 여권 전체의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국민 눈높이에는 한참 못 미친다. 윤 대통령부터 ‘책임은 내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인사,정책,스타일 등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내년 총선은 현 정부 출범 2년을 맞는 시점에 치러진다. 국민 기대에 어긋나는 국정이 계속될 경우 총선 표심은 이번 보선보다 훨씬 더 매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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