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156억달러(약 21조원)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MOU) 및 계약 51건을 체결했다. 지난해 11월 왕세자 방한 때 합의한 290억달러(약 39조원)와 합치면 무려 60조원에 이른다. 결코 작지 않은 액수다. 윤 대통령 ‘세일즈 외교’의 개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성과는 양국 간 투자협력을 기존의 건설·조선에서 수소를 비롯한 에너지, 인프라·전기차·스마트 팜 등 첨단분야까지 확대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1962년 수교한 양국 관계가 명실상부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사우디는 중동의 유일 G20(주요 20개국) 회원이며 세계 유가를 좌우하는 걸프협력회의(GCC) 좌장이다. 사우디 원유 530만배럴을 한국석유공사 울산저장 기지에 비축하고 원유 공급망 위기 때 한국이 이를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 성사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윤 대통령은 회담에서 “올해는 한국 기업이 사우디에 진출한 지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며 “포스트 오일시대에 한국은 사우디에 최적의 파트너”라고 했다. 사우디는 석유 위주의 경제구조를 제조업 중심의 신산업구조로 바꾸는 ‘비전 2030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 보면 숱한 경험과 경쟁력을 갖춘 한국과 손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방위산업 협력은 양국 관계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시켜준 증좌다. 한·사우디는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고성능 무기체계에 대한 무기수출계약도 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브리핑에서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방산협력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양국 협력이 안보분야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와 35억달러(약 4조7000억원) 규모의 천궁2 지대공미사일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에 비춰 유사한 무기체계일 것으로 관측된다.
60조원의 한·사우디 경협이 ‘윈윈’의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MOU 단계는 구속력이 약한 만큼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행될 수 있도록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지 오래다. 이번 기회를 제2의 중동붐과 경제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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