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의 원인으로 애초 지목했던 네트워크 장비 ‘L4스위치’가 아닌 ‘라우터’의 포트 불량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해킹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L4스위치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이번에도 라우터에 왜 물리적 손상이 발생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 공동팀장을 맡고 있는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과 송상효 숭실대 교수는 지난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이 발표했다. TF는 이번 행정망 장애의 원인이 네트워크 영역에서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행안부가 앞서 원인으로 지목했던 L4스위치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네트워크 장비 라우터에서 발생한 문제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행정망 장애 이후 반복 실시한 부하 테스트 도중 라우터에서 패킷(데이터의 전송 단위)을 전송할 때 용량이 큰 패킷이 유실되는 현상이 관찰됐다고 전했다. 라우터의 케이블을 연결하는 모듈에 있는 포트 중 일부에 이상이 생기며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TF의 설명이다.
TF는 라우터 포트에 왜 문제가 생겼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방행정전산서비스를 관리하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이재용 원장은 “(라우터) 장비가 2016년에 도입돼 노후한 것은 아니다”라며 “매일 시스템을 점검하지만 장비의 고장은 발생 전에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원인 분석에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이번 사안의 중요성, 관련 시스템의 복잡성을 고려했을 때 종합적인 검토와 충분한 검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TF는 해킹에 대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확인했으나 “현재까진 해킹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고 차관은 비슷한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이번에 파악된 문제점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우선 오래된 장비들을 전수 점검하기로 했다. 장애 발생시 처리 매뉴얼을 보완해 국민에게 신속히 안내할 수 있도록 하고, 신속 복구가 가능한 체계도 마련한다. 아울러 범정부 위기대응체계를 확립하고 공공정보화사업 추진 방식을 개선하는 등 중장기적인 제도 개선안도 마련해나갈 방침이다.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26일 통화에서 “IT(정보기술)의 60%가 소프트웨어고, 40%가 하드웨어”라며 “하드웨어 쪽에만 치중한 정부 발표는 반쪽짜리“라고 지적했다. 문 명예교수는 “제대로 원인을 규명하려면 소프트웨어까지 포함한 일대 재점검에 조속히 들어가야 한다”며 “데이터 쪽 문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조언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