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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왕릉 뷰 아파트’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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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1-27 23:29:11 수정 : 2023-11-27 23: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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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환경 보존 공익성보다
건축업자 사익 손 들어준 사례
공공이 지켜야 할 문화의 가치
사익에 밀려나지 않을까 걱정

김포 장릉이 내려다보이는 이른바 ‘왕릉 뷰 아파트’에 대한 법적 시비가 최근 건설업자의 승리로 진행되고 있다. 본래 김포 장릉 주변 200~500m 지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역사 문화 환경 보존지역’이라 일정 높이를 초과하면 문화재청의 사전 심의를 받아 그 결과에 따르게 돼 있다. 그러나 이번 ‘왕릉 뷰 아파트’는 건설업자가 법에 정한 사전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건설공사를 강행해 말썽이 있었다. 어쨌거나 고등법원까지 간 법적 다툼에서 법원은 건설업자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문화재청은 체면을 구기게 되었다. 법원이 이렇게 판단했을 때는 문화재 보존과 주민의 재산권 보호 등 여러 가지 상충하는 문제를 고려했을 터이니 일반인이 그 세세한 법적 문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결과적으로 문화재 보존을 위한 규제에 법원이 제동을 건 꼴이 되었다. 아직 대법원의 최종심이 남아 있으니 반전이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규제 완화’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규제를 완화해야 경제가 살고 국민이 편하다는 것이 일반인의 인식인 듯하다. 마치 규제는 나쁜 것 혹은 불필요한 것인데 공무원들이 ‘갑질’하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인 양 이해되기도 한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1990년대 초, 나는 처음 공직에 입문해 건설부(현 국토부)에 발령받았는데 당시 우리 사회의 키워드가 ‘규제 완화’였다. 특히 건축허가에 비리가 많다고 해 건축허가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겠다고 당시 건설부장관은 별렀다. 건설부장관은 파격적으로 서울 송파구청을 방문해 구청 건축과장을 앉혀 놓고 건축허가 시 필요한 절차를 묻고 그중 생략할 수 있는 절차나 서류를 모두 적시하라고 주문했다. 곧이어 건축허가 절차가 대폭 간소화됐다. 이러한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 사회에서 규제는 ‘필요한 것’이라기보다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내 재산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국가에서 내 재산에 ‘콩 놓아라! 팥 놓아라!’ 하며 간섭하느냐고 항변한다. 이러한 풍조에 따라 건축 규제는 차츰 완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현행 건축법은 지표면을 기준으로 절반 이상 묻히면 지하층으로 인정한다. 이 규정은 ‘규제 완화’의 결과이다. 원래의 규정에 따르면, 지하층은 지표면에서 3분의 2 이상 묻혀야 했다. 지하층 규정이 중요한 것은 지하층은 건축면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주택건설업자의 입장에서는 분양면적을 늘리기 위해 건축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지하층이 있어야 하고 지하층이 덜 묻혀야 그나마 창이라도 조금 낼 수 있어 분양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소위 ‘빌라’라는 이름의 4층짜리 공동주택에서 지하층이 생겼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도 ‘규제 완화’ 과정을 여러 번 거쳤다. 아파트의 베란다 역시 건축면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파트의 베란다는 마당이 없는 아파트의 특성상 유일한 외부 공간이자 비상시 탈출 공간이라 원래 알루미늄 새시를 설치해 유리창을 달 수 없었다. 건축면적에 포함되지 않으니 이를 막아 내부 공간으로 만들면 불법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파트의 내부 공간을 더 넓히고자 알루미늄 새시를 설치하고 큰 창문을 달기 시작했고 이것이 보편화하자 지금은 ‘규제를 완화’해 공식적으로 새시를 달고 유리창을 설치할 수 있다. 새시를 설치해 베란다의 공간을 내부로 넣었으니, 건축면적에 포함해야 마땅하나, 원래 태생이 외부 공간인 베란다였으니 이른바 ‘서비스 면적’이라 하여 건축면적에서 제외해 주게 됐다. 그러나, 이웃 나라 일본에 가면 베란다에 새시를 달아 내부 공간을 확장한 아파트를 볼 수 없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규제 완화를 하지 않을까? 아파트의 동(棟) 간 거리도 규제 완화의 결과 차츰 좁아졌다. 이렇게 해 같은 면적의 땅에 더 많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으나 일조와 조망, 환기 등에서 생활환경은 나빠졌다.

조선시대에도 비록 대궐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하는 법도가 있었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을 주도한 정도전은 조선의 헌법 격인 ‘조선경국전’을 통해 궁궐 건축의 원칙을 규정했다. 궁원(宮苑)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존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지경에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검소는 덕에서 비롯되고, 사치는 악의 큰 근원이니, 사치스럽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조도 ‘경희궁지’에서 궁궐 건축의 원칙을 밝혔다. 대체로 궁궐이란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치하는 곳이다. 사방에서 우러러보고 신하와 백성이 둘러 향하는 곳이므로, 부득불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이고, 그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경계하고 송축하는 뜻을 부치는 것이지, 그 거처를 호사스럽게 하고 외관을 화려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고, 부득불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이게 한 조선 궁궐 건축의 원칙은 유교를 국시로 했던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여러 궁궐 건축의 상량문에 항상 등장하는 ‘검소하고 질박하게 지었다’는 표현에서도 조선 궁궐 건축의 규제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사익과 공익의 균형이 아닐까. 공익을 위해 사익을 일방적으로 희생시켜서도 사익을 위해 공익을 무시해도 안 된다. ‘왕릉 뷰 아파트’가 용인됨에 따라 앞으로 건축에서 사익이 공익을 무시하는 풍조가 당연시될까 두려울 뿐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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