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으로 정치 경험은 전무
수평적 당정 관계 정립도 어려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한동훈 법무장관이 유력하게 거론되자 당 안팎에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 주말을 전후해 여권 핵심부에서 김기현 전 대표 사퇴 이후 당의 지도체제와 관련해 ‘한동훈 비대위’로 가닥을 잡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친윤(친윤석열)계는 적극적으로 반기며 지원에 나섰다. 높은 인지도에 비정치인 출신의 참신함, 돋보이는 대야 전투력 등을 들어 한 장관이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할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삼고초려라도 해야 한다”(친윤계 김성원 의원)는 말까지 나왔다.
한 장관은 수개월 전부터 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 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2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 8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16%를 기록해 19%인 이 대표에게 오차 범위 내에서 뒤졌다. 이런 한 장관이 위기에 처한 국민의힘에게는 매력적인 비대위원장 카드가 될 수 있다. 친윤 주류는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 장관이 비대위를 이끌면 공천 경쟁이 유리해질 것이란 기대감도 갖고 있다.
반면 비윤 진영은 검사 출신으로 윤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는 한 장관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검찰당’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비윤 진영의 주장 역시 한 장관이 당을 이끌게 되면 공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비윤계의 지적이 더 설득력이 있다. 한동훈 비대위는 득보다 실이 큰 카드가 될 공산이 크다. 한 장관은 정치 경험이 전무하다. 실전 정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가 총선 직전 급박하게 벌어지는 각종 상황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여당의 간판이 되는 순간 그는 야당의 집중 공세에도 직면하게 된다. 총선 결과에 따라 책임론이 부각될 수도 있다. 더구나 총선 전망도 어두운 상황이다. 자칫 여권의 기대주를 조기 소진시켜 버릴 위험이 작지 않은 것이다.
총선 공천관리위원회 등을 구성하는 막중한 권한을 행사하는 비대위원장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 재정립이다. 대통령 눈치를 살피고 지시를 받는 인물이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애써 비상지도체제를 꾸리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려면 당내 기득권, 주류 세력과도 얼굴을 붉힐 수 있어야 한다. 한동훈 비대위는 어느 의원 지적대로 ‘태자당’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한 장관을 차라리 선대위원장으로 활용하는 게 총선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는 재고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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