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위기론’ 커지자 대응 달라져
진솔한 사과 등 민심 수습책 내놔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디올백’ 수수 논란에 대해 그제 “함정 몰카”라면서도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이 김 여사 명품백 논란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내용을 보면 몰카 공작이 맞지 않느냐”고만 했던 그의 태도가 30일 만에 바뀐 것이다.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다”고도 했다. 총선 ‘수도권 위기론’이 심화하자 한 위원장의 대응 기류가 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힘에서는 외부 영입인사와 일부 중진 그룹을 중심으로 ‘영부인 리스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 왔다. 이를 처음 공론화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은 어제도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용서를 구해야 한다”며 김 여사 사과를 촉구했다. 김 비대위원은 17일에는 프랑스혁명을 촉발한 마리 앙투아네트 사례까지 언급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김 비대위원 발언과 관련해 “개인 의견으로는 많은 부분 공감하고 발언에 대해 존중한다”고 밝혔다. 영입인사인 이수정 교수, 3선의 하태경 의원과 조해진 의원도 같은 취지의 주장을 폈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실은 무시에 가까운 침묵으로 일관했다. 명품백 등의 경우만 해도 흔한 해명 조차 없이 뭉개려 했고, 그 틈을 야당의 공격이 파고들었다. 대통령실이 쉬쉬할수록 ‘김건희 리스크’는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김건희 특검법도 총선용 정략의 성격이 강하지만, 과반의 국민이 이에 찬성하는 이유를 직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 스스로 지난해 10월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 위원장이 연일 민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정치개혁 메시지를 내놨지만, 정권 견제론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한 위원장에 대한 차기 대통령 선호도는 지난해 12월 첫째 주 16%에서 이번 달 둘째 주 22%로 뛰었으나 같은 기간 정부 견제론은 51%로 동률을 기록했다. 어제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은 그 전주보다 1%포인트가 떨어진 32%에 그쳤다. 그 한복판에 ‘김 여사 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은 총선이 다가올수록 증폭될 전망이다. 김 여사가 종북이 의심되는 인사와 교류하며 취임 만찬까지 초청한 것도 기가 막힌 노릇이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현장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윤 대통령이 해가 바뀐 지 한참 됐지만, 신년 기자회견 일정을 잡지 못한 것도 김건희 리스크 때문이라는 관측이 많다. 신년회견을 지금이라도 자청해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민심 수습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별감찰관 추진과 제2 부속실 설치 운운한 것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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