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수련 병원 55곳에서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부가 의대 증원을 강행하면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 응답의 86%에 달한다고 어제 밝혔다. 전체 1만5000여명의 전공의 중 4200여명이 해당 조사에 참여했단다. 대전협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와도 단체행동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한다. 의료현장에서 광범위한 업무를 맡고 있는 전공의가 파업 선봉대로 나선다면 진료 시스템에 큰 혼란이 빚어질 것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어제 낸 성명처럼 “국민을 협박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정말 의사가 부족한지부터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정확한 의사 수급 추계를 위해 정부와 의료계 공동의 거버넌스를 구축해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논의를 처음으로 되돌리자는 건 뒷북 대응이자, 비효율적인 주장이다. 의료계는 지금 중증 상태다. 의사가 없어서 응급실을 운영하지 못하는 병원이 수두룩하다. 의대 증원은 의료 수요 증가는 물론이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하지 않나. 언제까지 정부 발목잡기와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해 국민 고통을 외면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미국과 일본의 의사들은 의사 공급 확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훨씬 미달하는 미국은 의대 정원이 2002년 1만6488명에서 올해 2만2981명으로 39% 늘었다. 일본의 의대 정원은 2007년 7625명에서 올해 9384명으로 23% 증가했다. 그 과정에서 의사들이 반대 행동에 나서기는커녕 대체로 호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평균 연봉 2억원이 넘는 우리나라 의사들은 왜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국민 대다수가 원하고 여야도 찬성하는 정책을 정부가 추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3년 전 의사 파업 때는 정부가 코로나19 유행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강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2025학년도 입시에 의사 증원을 반영하려면 오는 4월까지는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정부는 더 이상 의사단체의 눈치를 보지 말고 의대 증원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전공의를 앞세운 의협의 파업 기도는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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