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훈련 중 순직한 최민서 일병
1주기 추도식에 동료 등 100명 참석
부친 “아들 모습 함께 기억해줘 감사”
전몰·순직 군경 자녀 맞춤 정책 실시
경제적인 지원 넘어 정서까지 챙겨
4월 넷째 金 ‘순직군경의 날’ 지정도
지난달 12일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육군 제36보병사단. 사단본부 영내에 있는 ‘백호 용사의 집’ 앞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1년 전 혹한기 적응 훈련에 참여했다가 순직한 고(故) 최민서 일병의 1주기 추도식이다. 생전 최 일병이 소속된 부대 동료 장병과 지휘관 등 100여명이 추도식에 참석했다. 최 일병은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혹한기 적응훈련의 일환으로 연병장에 설치된 텐트에서 취침하다 세상을 떠났다. 당시 함께 훈련했던 최 일병의 동기인 김민우 상병(現 병장)이 이날 추도사를 낭독했다. 순직 당시에는 이등병이었지만 어느덧 전역을 바라볼 만큼 시간이 흘렀다. 이등병의 앳된 모습이 아닌 어깨에 분대장을 상징하는 녹색 견장을 차고 늠름한 모습이었다. 최 일병과 함께 했던 장병도, 최 일병과 인연이 없는 장병도 건물 앞에 세워진 최 일병의 흉상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으며 한마음으로 추모했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부대 주임원사가 대독한 추도사에서 “누구보다도 군을 사랑했고,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던 참군인 고 최민서 일병의 1주기를 맞아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며 “전우들에게 항상 큰 힘이 되어주었던 고인은 대한민국 육군이 자랑하는 믿음직한 최고의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최 일병의 아버지는 7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부대에서 마음을 담아서 많이 준비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민서가 부대원들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수도 있겠지만, 나라를 위해 순직한 우리 아들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민서를 추모하고 기억해주는 마음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36사단은 지난해 최 일병이 생전 복무했던 대대에 추모비를 세우기도 했다. 추모비에는 최 일병의 병영일기에 기록된 군인 정신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던 의지를 기리고 있다. 전우를 잃은 안타까움뿐 아니라 군 생활 내내 동료 병사들에게 귀감이 됐던 최 일병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순직 가족 일상으로 파고든 보훈
최근 순직 군경의 유족들을 위로하는 방식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 형식적인 추모가 아닌 유족들이 고인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이 늘고 있어서다. 군이나 보훈부 등에서도 과거처럼 현충일 또는 고인의 기일에 현충원에 찾아가 참배하는 수준을 넘어 고인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주고, 일상 속에서 유가족들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전몰·순직군경의 미성년자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종합 지원체계 정책인 ‘히어로즈 패밀리’다. 보훈부는 전몰·순직 군경 자녀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부모가 떠난 빈자리를 채워줄 정서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자는 취지로 지난해 4월부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에는 2024년도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한 전몰·순직군경 자녀들이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부모에게 합격통지서를 헌정하고 참배하기도 했다. 24학번 새내기가 될 천안함 참전용사 고 정종율 상사의 아들 정주한씨와 강도와 격투 중 순직한 조재연 경사의 아들 조민우씨, 순직한 아버지 고 이경수 경위를 따라 경찰행정학과에 합격한 딸 이지민씨 등 9명이 현충원을 찾았다.
졸업이나 대학합격 등은 고인이 살아있었으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축하했을 것이란 것을 알기에 이런 날 유족들이 느끼는 빈자리 역시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보훈부 관계자는 “부모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다가올 수 있는 시간을 국가가 대신해주고 싶어서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자녀들이 크면서 진로 고민 등 부모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이런 행사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미래세대의 국가유공자
대한민국 국가유공자는 크게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 민주유공자로 나뉜다. 대부분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여했던 참전유공자와 4·19혁명,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민주유공자들이다. 순직군경으로 등록된 국가유공자는 지난해 11월 기준 1만5251명이다. 독립·참전·민주화 유공자들의 선정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시기, 그리고 군사정권을 기준으로 한다. 반면 순직은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사고를 포함한 개념이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매년 4월 넷째 금요일을 ‘순직의무군경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의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안타깝게 사망한 순직의무군경의 희생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국가기념일이다. 올해 4월 넷째 금요일인 4월26일부터 보훈부 주관의 정부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그동안 정전이라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국방 의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순직의무군경을 기리는 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병역의무로 인해 젊은 나이에 순직한 이들은 대부분 배우자나 자녀가 없어 부모마저 세상을 떠나면 그 희생을 더 이상 기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4월 넷째 금요일로 지정한 이유는 가정의 달인 5월을 앞두고 국가와 국민이 먼저 순직의무군경의 희생을 추모하고 가족을 잃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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