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치 프리미엄’을 노려 4조원대 외화를 불법 송금한 일당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일당의 행위가 외환거래법상 ‘외국환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특정금융정보법 위반, 업무방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외화 송금 총책 김모씨 등 14명에게 지난 6일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 등은 2021년 1월∼2022년 8월 사이 256명의 계좌에서 돈을 모아 은행 9곳을 통해 약 4조3000억원을 해외로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유령회사 8곳 명의로 자금을 모아 이를 무역대금으로 속여 은행을 통해 해외 공범들에게 보냈다. 이 돈으로 중국, 일본 등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들인 뒤 국내 거래소로 전송해 김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팔았다. 김치 프리미엄은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이 외국 시장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이다.
검찰은 김씨 등이 은행을 통해 외국에 거액을 보낸 행위는 무등록 외국환업무를 한 것으로 보고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외국환거래법은 외국환업무를 업으로 하려는 사람은 업무에 필요한 충분한 자본·시설 등을 갖춰 기획재정부장관의 등록을 거쳐야 하고, 무등록으로 외국환업무를 한 사람은 형사처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들을 외환거래법상 ‘무등록으로 외국환업무를 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았다. 박 판사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수출입거래를 주로 하는 기업들이 무역거래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은행에 돈을 지급해 해외 수취업체의 계좌로 같은 돈에 해당하는 외환을 송금해달라고 하는 일과 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며 “외환을 송금해달라고 은행에 신청했을 뿐이고, 실제로 외환 송금을 실행한 주체는 은행”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들 행위를 굳이 외국환업무로 보고 규율할 필요성이 인정되더라도 이는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씨 등이 가상자산을 매도·매수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가상자산사업자로서, 금융정보분석원장에 상호와 대표자 성명 등을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다는 검찰 주장도 배척됐다. 이들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가상자산을 매도 또는 매수하겠다고 광고를 하거나, 부수적으로 투자자문을 제공했다는 등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기 때문에 가산자산사업자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실제 물품이 수입된 사실이 없는데도 허위로 작성한 증빙자료를 첨부해 은행에 외환 송금을 신청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은행이 이런 신청을 받아들인 것은 결국 직원의 불충분한 심사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