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서울 영등포 문래예술공장에서 21번째 민생토론회를 열어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전면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공시가격을 매년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는 소위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시행했는데 곳곳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드러나고 국민의 고통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는 “법을 개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법 개정 전이라도 여러 가지 다양한 정책 수단을(통해), 하여튼 폐지와 같은 효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부가 어제 발표한 ‘2024년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2020년 수준의 공시가격 현실화율(69%)을 적용했다. 그 결과 전국 평균 상승률은 지난해와 비슷하게 1.52%로 낮게 나왔다. 2005년 공동주택 공시 제도 도입 이래 6번째로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해 시세 변동 정도를 공시가격에 그대로 반영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전 정부에서 집값 상승에 공시가격 인상까지 겹치다 보니 세금이 1년 새 2∼3배 올랐던 것을 돌이켜보면 정상화 조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집값 안정과 조세부담 형평성을 내세워 추진한 공시가격 인상률은 가팔라도 너무 가팔랐다. 2030년(단독주택은 2035년)까지 시세의 90%를 목표로 한 2020년 11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따라 공시가격이 2021년 19.05%, 2022년 17.20%나 올랐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5% 올리면 종합부동산세가 70% 가까이 증가한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종부세 폭탄을 맞으니 소득 없이 집 한 채만 가진 은퇴자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공시가격은 재산세·종부세 등 세금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기초노령연금 등 60여개 행정·복지제도의 기준이 된다. 집을 팔아 줄이고 싶어도 높은 양도소득세와 취득세로 출구마저 막혔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재산이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건 조세정의에 부합한다. 그렇다고 공시가격 현실화율 목표를 너무 높게 잡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동산가격 급락으로 시세보다 공시가격이 더 높아진 역전현상을 이미 목도하지 않았나. 정부가 올 하반기까지 적정한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결정해 내놓기를 기대한다. 부동산 관련 세금을 비롯해 조세의 불합리한 점을 정상화하는 계기로도 삼길 바란다. 더불어 공시가격 산정 과정을 더욱 공정하게 다듬어 신뢰성을 높이는 노력도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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