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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무기 또 쓴다”…장난인 줄 알았더니, 장난 아니었던 이유는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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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31 06:00:00 수정 : 2024-03-30 13: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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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첨단 무기를 갖춰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던 개념이었다.

 

스텔스 전투기 F-35를 비롯해 각국에서 구상하는 6세대 전투기, 음속의 수 배에 달하는 속도로 날아가는 극초음속미사일 등 군사과학기술 개발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다. 첨단 무기가 전쟁의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덴마크 공군의 F-16 전투기. 아르헨티나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로 이같은 추세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오랫동안 썼던 무기를 다시 쓰거나, 예전에 개발된 무기를 구매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첨단 기술만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신무기가 국가의 안보 환경에 부합하는지, 전장에서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나는 셈이다.

 

◆때에 따라선 오래된 무기도 ‘OK’

 

거액을 들여 무기를 도입할 때, 가능하면 신무기를 구매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행보도 있다. 중고 무기를 쓰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국방부는 26일(현지시간) 덴마크 정부와 F-16 전투기 구매 의향서(LOI)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덴마크 공군 F-16 전투기가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F-35를 도입하는 덴마크는 기존의 F-16을 퇴역시키고 있는데, 아르헨티나는 이 가운데 24대를 7억 달러에 도입한다. 최종 구매 계약은 다음달에 체결된다.

 

2015년 프랑스산 미라지 전투기를 퇴역시킨 아르헨티나는 초음속 전투기를 운용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이 JF-17를 제안하고 나섰다. 

 

신형 기종인 JF-17을 제안한 중국은 수출에 제약이 거의 없는 수준의 항공 무장 및 센서 패키지도 제공했다. 이때 제안된 가격은 12대에 6억6000만 달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에서 쓰던 F-16은 1981년에 미국에서 생산된 초기형이다. 43년간 쓰였지만 대대적인 성능개량을 거쳤다.

 

AIM-120 중거리 공대공미사일과 AIM-9 단거리 공대공미사일 운용능력을 얻었고, 소프트웨어 등이 향상됐으며 수명도 연장됐다.

 

새 전투기를 사는 것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우수한 공중전 능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전 세계에서 쓰이는 F-16과 성능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 기체 24대를 중국산 JF-17 12대 도입비로 구입할 수 있다. 훈련, 유지보수, 물류 등 항공기를 40년 동안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요소도 포함된다.

 

아르헨티나로선 중고지만 검증됐고, 저렴하며, 수십년간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F-16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웨덴 사브가 만든 그리펜 전투기 14대를 운용하던 헝가리는 최근 4대를 추가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헝가리 공군 그리펜 전투기 편대가 비행을 하고 있다. 사브 제공

계약 직후 사브는 “2035년 이후에도 비행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혀 그리펜의 장기 운용을 보장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된다. F-16과 그리펜은 오랜 기간 운용되면서 전투기능과 기술이 검증됐고, 전천후 작전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전투기가 담당해야 할 모든 종류의 임무에 곧바로 나설 수 있다.

 

F-35처럼 새로 개발된 지 얼마 안된 기종은 다양한 기능을 계속 추가해야한다. 전투기능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는 국가로서는 부담스럽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래 전천후 전투능력을 최단 기간 내 최대한의 수준에서 발휘하는 것이 중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F-16과 그리펜 도입은 적절한 선택인 셈이다.

 

작전환경에 따른 선택도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고강도 안보위협에 직면했거나 국방비에 상당한 지출이 가능한 국가는 F-35처럼 최첨단 무기를 구매해서 주변국 위협에 맞서야 한다.

 

반면 안보 위협이 크지 않고 경제규모가 작아서 국방에 많은 투자를 하기가 어려운 나라는 첨단 무기 도입이 어렵다. 이들 국가에는 성능개량이 충분히 이뤄진 중고 무기나 개발된 지 오래된 장비가 가성비 측면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전쟁터에서 잘 쓰는 게 중요

 

첨단 기술이 적용된 신무기는 전략적 측면에서 큰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전에서 제대로 활약하면서 실적을 쌓아야 억제력이 작동한다. 그렇지 않다면 의문이 제기되고, 구식 무기에 자리를 내주는 일도 벌어진다.

 

러시아가 자랑하던 T-14 전차가 대표적 사례다.

러시아 육군 T-14 전차가 도로에서 이동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전차 수천 대를 잃었다. 지상전을 치르기 위해선 신형 전차가 절실하게 필요한데, 정작 러시아군은 최신형인 T-14 전차를 투입하지 않고 있다.

 

2015년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서방측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기존 전차의 성능개량에 만족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러시아가 최신 전차를 선보인 것이다.

 

T-14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가 개발해온 신형 주력 전차다. 최대 시속 80㎞로 달리며 차체 앞쪽에 탑승한 병사가 무인 포탑을 원격 통제할 수 있다. 대전차미사일을 저지하는 능동방호체계와 최첨단 센서 등 첨단 장비도 갖췄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T-14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성능만 놓고 보면 T-14가 공격력과 방어력 등 전차의 핵심 성능 측면에서 다른 전차들보다 더 강한 위력을 전장에서 발휘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 셈이다.

 

막대한 예산과 더불어 11년의 시간을 투자해 첨단 전차를 개발해놓고도 전쟁터에서 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러시아 육군 T-14 전차가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T-14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옛소련 시절 만들어진 구식 기갑차량들이 공백을 메우고 있다.

 

러시아는 냉전 종식 이후 옛소련이 비축했던 전차와 장갑차 수만대를 넘겨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일부 수량이 우크라이나, 체첸 등에 제공됐지만 대부분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전쟁 초기 투입했던 T-72·80·90 전차 수천대가 파괴되면서 구식 기갑차량들이 일선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1948년에 개발됐던 T-55 전차, 1960년에 처음 양산형이 등장했던 T-62 전차를 재생하고 수리해서 우크라이나에 투입하고 있다.

 

아프리카 수단 등 일부 후진국에서만 쓰이는 구식 전차가 다시 원개발국인 러시아에서 실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서방측 전차와의 1대1 대결에선 압도적으로 열세이며, 군사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구식 전차다. 그러나 T-55·62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전쟁의 기본 원칙과 전술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오래된 무기라도 정상작동만 한다면 유효하게 쓸 수 있다.

 

T-55·62는 T-14보다 성능은 많이 떨어지지만 기술적으로 검증됐고 사용법도 확립됐다.

러시아가 만든 기갑차량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노후 무기지만 냉전 시절 수만대가 만들어졌다보니 엔진 등의 장비와 부품도 구할 수 있다. 포탄은 T-55·62 전차를 대량으로 운용하는 북한과 이란에서 반입이 가능하다. 군사작전에 필요한 수준의 가동률을 기록할 수도 있다.

 

개발된 지 수십여년이 지난 구식 전차가 T-14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더 높은 전투력을 보여주는 이유다. 

 

러시아군은 대당 단가가 700만달러가 넘는 T-14 양산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파괴된 T-72·82·90 전차를 회수해 수리하고, 신규 생산을 진행하는 한편 구식 전차를 정비하고 성능개량 사업을 추진해서 전차 손실을 메울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독일산 레오파르트2 전차, 미국산 M1A1 전차보다 성능이 뒤떨어지지만, 구식 기갑차량을 투입해 일선에서의 전차 수요에 신속하게 부응하면서 손실을 보충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해 수적 우위를 얻으려 할 것이라는 것이다. 

 

무기는 단순히 첨단 기술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는 전쟁에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 전쟁에 참가한 장병들은 자신이 쓰는 무기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된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무기를 원한다.

 

첨단 무기가 전쟁에서 제대로 쓰이려면 설계 및 개발 당시 설정했던 성능이 어떤 환경에서도 정상적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선 부대 지휘관들은 첨단 무기를 불신하게 되고, 구식 장비 사용을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 최강의 성능을 지닌 첨단 무기라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무기 개발 못지 않게 전쟁에서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그렇지 않다면 장병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만든 첨단 무기 대신 기존에 쓰던 구식 무기를 또다시 사용하려 할 것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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