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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고향세 1조엔 추산…日 시골마을의 성공비결은?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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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16 06:03:00 수정 : 2024-04-16 18: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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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품 비교하며 기부할 지자체 고르는
민간플랫폼 본격 등장 따라 인지도 상승
공제 한도액 2배 늘며 답례품 경쟁 가열

기쓰키시, 관련 업무 일부 민간 위탁 나서
기부자 만족도 높이는 중간 지원역할 맡겨
2018년 1억6500만엔 → 2023년 9억2300만엔

지자체, 전액 출자 지역상사에 위탁 많아
수익 일부 지역 순환 경제 위해 재투자도
제도 폐지 이후 대비 자생력 키우기 매진

이달 8일 일본 규슈 오이타현 기쓰키시. 벳푸만에 접해 다양한 해산물과 농산물 산지로 이름난 인구 2만6600여명의 이 지방 도시는 지난해 고향납세로 기부금 9억2300만엔(약 82억9850만원)을 모았다. 1억6452만엔을 거둬들인 2018년 이래 매년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결과다. 눈부신 급등세는 이곳만의 일이 아니다.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인구 2만9000만명 안팎의 도시 스에정은 2019년 불과 2348만엔을 모금하는 데 그쳤지만 이듬해 전년보다 37배 많은 8억7564만엔을 끌어모으는 신화를 썼다. 

 

두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다. 눈에 띄는 답례품을 내놓기 위해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발로 뛰고, 전문성을 갖춘 민간업체가 중간조직으로 참여해 민관이 유기적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세계일보는 일본 고향납세 제도를 본떠 지난해 출범한 국내 ‘고향사랑기부제’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사회적기업 (주)공감만세와 일본 연수를 공동기획했다. 전국 8개 광역·기초자치단체 공무원과 함께 이달 8∼11일 일본 4개 도시를 방문해 모범 사례를 엿봤다.

후쿠오카현 스에정에서 고향세 업무를 담당하는 이마나가 마사키가 11일 “답례품을 활용해 지자체 수입을 증대하고, 마을 기업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하고 있다. 후쿠오카=이규희 기자

◆“민간 위탁으로 효율성 극대화 성공”

 

일본 고향납세는 2008년 시작됐지만 제도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것은 2012년 이후다. 기부자가 온라인 쇼핑을 하듯 답례품을 비교하면서 기부할 지자체를 고르도록 하는 민간 플랫폼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다. 2015년 공제 한도액이 2배로 늘어 지자체 간 답례품 경쟁에 불이 붙었고 전국 단위 기부액은 껑충 뛰었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22년 고향납세 전국 기부액은 9654억엔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기부액은 1조엔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산되며, 향후에도 시장 규모의 확대가 유력하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기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각 지자체의 정책적 시도가 있었다. 6년간 고향납세 업무를 담당했다는 기쓰키시청의 마쓰이 히로아키는 기쓰키시의 모금액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해는 고향세 업무 일부를 민간에 위탁한 2018년이라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시청 공무원 1명과 회계 직원이 고향세 전담 인력의 전부였다. 민간 플랫폼에 답례품을 게시하고 세금 공제 서류를 발행하는 데에만 하루가 갔다. 적은 인력이 일상 업무에 쫓기다 보니 신상품 기획이나 신규 사업자 발굴, 민간 플랫폼 입점 확대 등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부금은 연 1억6000만엔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기쓰키시의 지역 상사 ‘주식회사 깃토스키’가 설립되며 전기를 마련했다. 지자체가 답례품 홍보와 상품 출고, 기부자 클레임 대응 등 업무를 깃토스키에 위탁하자 민관의 역할분담이 가능해졌다. 지역 상공회·농협(JA)·은행 등이 출자해 만든 지역 밀착형 상사 깃토스키와 업무 영역을 나누자 여유가 생긴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답례품을 개발하고 더욱 많은 민간 플랫폼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이는 곧 기부금 증대로 이어졌다. 기쓰키시가 모금한 기부금은 2018년 1억6452만엔에서 2019년 4억1169만엔, 2020년 6억8692만엔, 2021년 8억2443만엔, 2022년 9억2336만엔으로 급등했다.  

 

민간에 지급하는 위탁수수료가 과도하게 책정돼 답례품의 품질이 떨어질 위험은 없을까. 일본 지자체 관계자들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정한 답례품 경비 비율이 정해져 있어서다. 일본은 기부금 1만엔의 경우 답례품 대금을 기부금액의 30%인 3000엔 이내, 배송료와 민간 플랫폼 수수료, 결제 수수료 등 기타 경비는 2000엔 이내로 책정하도록 했다. 입점수수료와 민간 위탁수수료를 합산해도 기부금의 20%를 초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일본 지자체 관계자들은 “민간 플랫폼 입점 수수료는 (기부금의) 10%, 민간위탁 사무를 맡은 지역 상사에는 5% 정도를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향세는 지역자립력 기르는 수단”

 

지자체가 전액을 출자해 지역 상사를 설립, 고향세 사무를 위탁하는 사례도 흔하다. 사가현의 겐카이정이 대표적이다. 겐카이정이 출자해 만든 사단법인 ‘모두의 지역상사’에서 일하는 이노우에 슌이치씨는 “답례품 생산자가 상품 품질에만 집중하도록 사무나 행정 처리 등을 전담해 결과적으로 기부자가 최상의 답례품과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게 중간 지원단체인 지역상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컴퓨터 사용이 능숙하지 않은 생산자의 업무를 돕는다거나 민간 플랫폼에 게시하는 사진과 썸네일을 만드는 일, PR 전략을 짜거나 차별화된 답례품을 기획하는 등의 기부액 향상을 위한 모든 일을 한다”고 전했다. 겐카이정이 지난해 모은 기부금은 17억9456만엔. 고향세로만 얻은 기부액이 올해 겐카이정 본예산의 약 18%에 육박한다. 인구 5200여명의 소도시에서 민간이 공공과 손잡고 일궈낸 눈부신 성과다. 거둬들인 수익의 일부는 지역 경제 활력을 위해 재투자한다. 

오이타현 우스키시에서 고향세 업무를 담당하는 이타이 신노스케가 고향세 기부자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사용 중인 채팅 시스템을 시연하고 있다. 이규희 기자

모든 지자체가 고향세 업무를 민간에 전면 위탁하는 건 아니다. 우스키시청의 이타이씨는 “타 지자체는 고향세 업무의 절반 이상을 민간에 위탁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우스키는 시가 주요 업무를 직접 관장한다”고 말했다. 우스키의 2명뿐인 고향세 담당 공무원 중 한 명인 그는 “답례품 생산자, 그리고 기부자들과 긴밀히 관계를 맺고 기부가 연쇄적으로 이뤄지도록 만들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민관 협력의 양태와 정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고향세 사업에 공을 들이는 까닭은 지자체들마다 모두 엇비슷하다. 답례품이 고장을 전국에 알리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끌 마중물이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고향세를 첫 단추로 지역 특산품을 브랜딩하고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효과를 기대한다는 의미다. 이노우에는 “고향세는 정권이 바뀌거나 법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제도”라며 “답례품이 영원히 지역에 돈을 벌어다 줄 거라는 믿음은 버리고, 이 제도가 있는 동안 지역의 힘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고장 바깥, 특히 대도시를 상대로 상품을 팔 때 어떤 점을 중시해야 하는지, 어떻게 지역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고향세 업무를 통해 배울 수 있다”며 “이런 내공이 쌓이면 지역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타무라 카즈히로 우스키시 부시장은 “한국의 인구 감소와 지역소멸이 굉장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일본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고, 우리와 같은 지방 도시는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세를 계기로 양국 지자체가 공통의 숙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우스키시의 답례품 생산업자인 도예가 사카모토 고지가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규희 기자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 총체적인 지역발전 수단… 日 모범사례 벤치마킹을”

 

필자는 1999년 6월 일본으로 옮겨 연구원과 교수로 생활했다. 그래서 일본이 고향세를 도입한 초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지켜봤다. 고향세 납세자로 참여해 효능감을 체감하기도 했다. 지자체는 고향세 모금을 통해 지역 문제 해결의 중요한 재원으로 활용해 다양한 사례를 만들고 있다.

 

이런 고향세도 초기부터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정부는 민간이 참여함으로써 발생할지도 모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과 독점, 그리고 지자체 간 격차 발생 가능성 등을 이유로 기부제도에 많이 간섭했다. 초창기 기부시스템은 무척 불편했다. 결국 고향세 실적이 저조해 정부는 민간플랫폼 진입을 허용했다. 고향세와 관련해 중앙 관료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고, 매년 성장하는 고향세 모금액을 보면 그 선택은 옳았음이 증명됐다.

 

2012년 일본에서 민간플랫폼의 등장은 공급과 수요를 혁신한다는 제도 개선 방향에서 출발했다. 답례품인 특산품의 공급 혁신은 지자체가, 홍보·마케팅은 민간이 맡아 수요를 창출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총무성은 감독이 아니라 지원만 하자는 운영 방침으로 전환했다.

고향세의 성장은 지방정부, 지방의 민간기업의 성장, 지역 활성화가 함께 간다. 민간플랫폼 간 경쟁, 민간플랫폼과 지자체의 협업으로 다양한 답례품과 기금사업이 탄생한다. 지자체는 모금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해 제도의 신뢰성을 높인다. 그 결과 모금이 증가하며 답례품 시장도 성장하는 선순환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또 민간플랫폼 간의 경쟁은 일본 정보기술(IT) 산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일본 국민들은 고향세 운영은 민간이 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초기 일본 총무성 관료들의 고민과 같은 행안부의 우려도 이해는 되나 지금의 일본 고향세를 보면 기우였음이 증명된다. 일본 고향세를 벤치마킹한 고향사랑기부제를 지자체와 민간의 자율을 통제하며 운영하는 게 이상하다.

 

고향세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를 연구할 것이 아니라 정말 잘하는, 열심히 모범사례를 만드는 지자체를 벤치마킹할 것을 권한다.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는 지자체의 자주적 발전, 지역 활성화, 지방소멸 해결 등에 기여하는 총체적 지역 균형 발전 수단이 될 것이다.


오이타·사가·후쿠오카=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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