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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아주 작은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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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20 23:16:48 수정 : 2025-05-20 23: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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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갈 일정이 생겨 나는 내내 즐거운 마음이었다. 지난해 부산에 갔을 때는 이곳저곳을 급히 이동해야 했고 말을 많이 해야 했으며 좋아하는 것보다는 유명하다는 것을 먹었다. 무엇보다 바다를 볼 시간이 없었다. 이번 일정은 여유롭고 느긋했으며 숙소에서도 언제든 바다를 내다볼 수 있었다. 옆에 작은 정원이 딸린 향이 좋은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어 더욱 좋았다. 쉼, 이라고 나는 중얼거리며 부산으로 향했다. 쉼, 쉼, 쉼표, 단조로운 내 일상에 찍힐 아주 작은 쉼표를 떠올리며 말이다.

일행은 이곳에 요트 투어가 아주 많다고, 선수에서 일몰과 야경을 보는 경험이 꽤 근사하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어 선박장으로 가 보니 정말 이곳저곳에 줄이 있었다. 주위가 어스름할 때 우리는 배에 올랐다. 노을이 깔리는 속도보다 지상에 알록달록한 빛이 깔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보라색 불빛을 뿜어내고 있는 광안대교를 향해 배가 달려가는 동안, 나는 비타민 사탕을 오독오독 씹으며 2층 선실에 머물렀다. 슬슬 뱃멀미가 올라온 탓이었다. 선실에는 나이가 많지 않은 모녀가 꼭 붙어 앉아 있었다. 누군가 갑판에 나가 보라고 권하자 “엄마가 추위를 많이 타세요” 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보듬었다. 대교 아래 배가 머무르는 동안 그들은 목을 길게 빼 밖을 구경하며 자주 감탄했다. 저것 좀 봐, 저기. 그들이 가리키는 곳을 나는 슬쩍 훔쳐보았다. 눈을 깜빡이듯 부산스럽게 색이 바뀌는 지상의 빛무리와 광안대교를 올려다보며 그들은 즐거워했다.

1층 갑판은 다른 의미에서 정신없이 바빴다. 갑판 끝에 걸터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를 설치해 둔 건 나름의 포토존인 모양이었는데 그곳에 앉기 위한 눈치싸움이 치열했다. 유튜버가 투어 시간 내내 그곳을 차지하고 있어 사람들은 보다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자신을, 서로를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인생샷 혹은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그들은 한 시간 남짓한 투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러니까 핸드폰의 작은 화면에서 고개를 든 적이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파도 위를 느리게 지나느라 배가 크게 출렁였다. 그럴 때마다 주위가 아득히 멀어졌다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수평선 위로 짙게 깔린 안개와 노을이 뒤섞여 혼란했는데 표표히 날아오르는 새들은 흔들림이 없었다. 점멸하는 빛과 곧게 뻗어 나가는 빛, 수없이 쌓이고 겹치는 빛조각들이 건물과 도로로 빼곡한 지상을 이전과 다른 것으로 바꿔 놓고 있었다. 저곳에 있는 것은 단지 일상일 뿐이겠으나 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응시하는 것만으로 내게는 쉼이 되었다. 바람이 온몸을 쓸고 지나가는 감각이 낯설고 생생했다. 짐작할 수 없는 형태로 흩어지고 부서지는 바람과 파도의 분주함을, 빛과 어둠을 담기에 뷰파인더는 너무 작지 않나. 사진은 언제부터 과시를 위한 인증, SNS 업로드용으로 바뀌었을까. 나는 내 안에 이제 막 돋아난 작은 쉼표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사방에 빛이 그득했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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