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에는 프랜차이즈, 대리점, 인터넷 판매, 홈쇼핑 등 다양한 채널이 참여한다. 각 유통채널은 나름의 속성과 장단점에 따라 구별된다. 사업자는 자기 사업에 가장 유익한 채널을 선택하여 ‘영업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한 채널 중에 다단계판매도 있다.
다단계판매원은 점포나 설비가 없어도 되므로 창업비가 적게 든다. 따라서 오프라인 점포와 달리 폐업 때의 피해도 크지 않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은 크지 않다. 광고비가 절감되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된다.
다른 한편, 다단계판매는 입회금을 받고 하위판매원을 모집하며, 그 하위판매원이 다시 더 하위의 판매원을 모집하여 자기 입회금을 만회하게 하는 무한사슬식 사기 수법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불법 피라미드를 금지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며 건전한 다단계판매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1992년에 방문판매법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 다단계판매업의 현황은 2022년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그해 다단계판매회사의 총매출액은 5조4166억원이고, 등록된 판매원은 705만명이다. 후원수당을 받은 판매원이 약 137만명이고 연평균 1억원 이상을 받은 판매원도 2000명을 넘는다. 후원수당을 받지 않은 판매원은 다단계 상품을 사려고 등록한 고정적 소비자다. 다단계판매와 연관된 우리 국민이 수백만명에 이른다.
정부는 그간 과잉규제, 불합리한 규제를 개혁하겠다고 표방해 왔다. 규제는 본시 법률에 기초하므로 모든 규제의 원천은 국회다. 일반 국민과 언론이 견지망월(見指忘月)하며 이 엄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가 먼저 변하지 않은 한 정부가 주창하는 규제개혁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시행령의 개정이나 해석의 전환을 통해 정부의 의지만으로 개혁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방문판매법 시행령 일부 개정을 입법예고한 것은 규제개혁을 솔선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어 반갑고 환영한다.
다만, 개정안 중에 판매되는 상품 등의 가격을 200만원으로 하는 내용은 아쉽다. 통 큰 개선이 아니라 옹색한 미봉책이다. 상품 등의 가격 규제는 1995년에 도입되었다. 소비자와 판매원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럴듯한 명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허구다. 이유를 보자. 우선, 이는 우리나라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다. 다른 나라에는 다단계판매를 규제하는 특별법이 없으니 가격 규제도 없다. 소비자와 다단계판매원에게는 각각 14일과 3개월 이내 청약철회권이 보장되어 있다. 2002년에 피해보상제도까지 도입되어 피해자는 공제조합 등으로부터 더 확실히 환불받게 되어 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장치는 이제 충분히 완비된 상태다. 더 이상 가격을 제한할 명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성장을 억제하는 분재 방식으로는 울창한 삼림을 조성할 수 없다. 산업생태계도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나 대리점 사업 등에 없는 가격 제한이 다단계판매의 산업적 성장을 막고 있다. 이러한 채널 간의 불평등한 규제는 위헌적 차별이다. 국회가 정한 가격 제한을 정부가 폐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행령에서 그 상한을 예컨대, 1천만원으로 확대한다면 여러 불합리가 대폭 해소될 것이다. 정부의 규제개혁이 말이 아닌 실천의 이정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별히 주시하는 국민이 수백만명이나 되니 표를 좇는 정치권도 트집잡지 못할 것이다.
최영홍 한국유통법학회 회장·고려대학교 유통법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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