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앤서니 새틴/ 이순호 옮김/ 까치/ 2만2000원
유목민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와 역사 곳곳에서 등장한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가 한때는 수렵채집인이었으며, 차차 정착하게 됐음을 보여준다. 성경은 풍요로운 수렵채집인의 삶을 에덴동산 이야기로, 신석기혁명으로 인한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의 갈등을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기록하고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성벽 안에 사는 왕 길가메시가 성벽 바깥의 자유로운 삶을 상징하는 인물 엔키두를 애도함으로써 유목민의 삶의 방식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아쉬워한다.
유목민이 향유한 삶의 방식은 우리 유전자에도 깊이 남아 있다. 정착 생활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는 한 장소에 진득이 앉아 있지 못하고 관심사가 빠르게 변하는 성질을 ‘산만함’으로 치부하고 교정하려 든다. 그러나 유전학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성정은 ‘유목민 유전자’ DRD4-7R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기록물과 건축물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서 유목민은 야만인, 미개한 종족으로 그려진다. 주류 세계사에서 유목민의 위치는 침략자, 살생하고 파괴하는 무리일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기록 중심의 역사에서 유목민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신화와 서사시, 유목민이 남긴 유적과 방랑하는 삶에 맞는 유전자까지 최신 연구는 유목민들이 어떻게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왔는지 보여준다. 또한 기존의 정착민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 유목민 제국의 역사를 톺아봄으로써 유목민들의 가치가 서로 다른 문명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고 르네상스가 꽃피는 데 일조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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