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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1988년 세계는 희한한 광경을 목도했다. 당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에 프랑스 대표로 두 명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총리가 그들이다. 좌파 사회당 소속인 미테랑은 1981년 임기 7년의 대통령으로 뽑혔다. 그런데 1986년 하원의원 총선거에서 시라크가 이끄는 우파 야당이 이기며 여소야대가 됐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상 대통령의 총리 임명에는 하원의 동의가 꼭 필요하다. 각기 다른 정파에 속한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나라를 이끄는 동거(同居)정부가 처음 출현한 것이다.

프랑스 같은 이원집정제 국가는 보통 대통령이 외교·국방, 총리가 경제 등 내정을 각각 맡는다. 문제는 이들 영역이 칼로 두부를 자르듯 명쾌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방위산업 육성과 해외 무기 수출 등은 외교·국방·경제가 모두 얽힌 사안이다. 시라크는 ‘총리도 외교 분야에 권한이 있다’는 논리를 들어 미테랑이 참가하는 각종 국제회의는 물론 양자 정상회담까지 동행했다. 상대방 국가가 ‘한 나라에서 대표가 한 명만 나와야지’ 하며 마뜩잖게 여긴 것은 당연하다.

동거정부는 1986∼1988년에 이어 1993∼1995년, 1997∼2002년 세 차례 나타났다.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여론이 확산하며 프랑스는 2000년 헌법을 뜯어고쳤다.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줄여 하원의원 임기와 맞춤과 동시에 대선 직후 총선을 실시하도록 했다.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하원 다수당이 될 확률을 높여 동거정부가 생겨날 여지를 축소한 것이다. 실제로 2002년 이후 동거정부가 사라졌으니 일견 성공한 개헌이라 할 수 있겠다.

프랑스가 오는 30일(1차 투표)과 다음 달 7일(결선투표) 조기 총선을 치른다. 극우 성향의 야당 국민연합(RN)이 여당인 르네상스에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여소야대가 되면 올해 29세의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가 총리에 취임하며 22년 만에 동거정부가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임기를 3년가량 남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가 참가하는 각종 국제회의에 대통령과 총리가 나란히 등장하는 모습이 재현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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