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 등이 그제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공공의대법)을 발의했다. 의사들은 물론 정부도 반대하는 공공의대 설립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으로 인한 의·정 충돌이 4개월 넘게 이어지는 국면에 굳이 이런 법안을 발의한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갈등을 더 부추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공공의대 신설 법안은 내려놓는 것이 마땅하다.
법안의 핵심은 공공의대를 만든 뒤 그 졸업생들로 하여금 10년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기관 및 의료 취약지 소재 기관 등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역 및 필수 의료 강화란 측면에서 참고할 대목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윤석열정부의 의사 증원 방침에 따라 이미 내년부터 의대 정원이 지금보다 1497명 늘어나기로 돼 있다는 점이다. 의사와 의대생들의 반발에도 대법원이 정부 손을 들어줌에 따라 의대 증원은 진작 본궤도에 올랐다. 그런데도 굳이 의대 하나를 새로 만들자는 것은 불필요하게 의사들을 자극해 의·정 충돌만 더욱 확산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전북 남원·장수·임실·순창을 지역구로 둔 박 의원이 공공의대 설립이 확정되면 이를 자신의 지역구로 유치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박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며 밝힌 입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그는 “의대 정원 증원에 동의한다”면서도 “정부는 독단적 의사 결정과 과학적 근거 부재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중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의대 증원을 놓고 “잘된 일”이란 답변이 66%로 “잘못된 일”(25%)이란 의견을 압도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면 정부와 뜻을 같이하면 될 일이지 ‘사과’ 운운할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당은 2020년 공공의대 설립 시도가 왜 실패했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지난 2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촉발된 의·정 충돌이 어느덧 5개월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진료 공백으로 생명을 위협받아 온 환자들은 오늘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 휴진 철회 및 재발 방지법 제정 환자 촉구 대회를 연다. 오죽하면 몸이 아픈 환자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서겠는가. 민주당이 의대 증원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새로운 분란을 조장하기보다 의사들에게 진료 현장 복귀를 주문하는 게 먼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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