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래프는 (가)∼(다) 자원의 지역별 생산량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단, (가)∼(다)는 각각 고령토, 석회석, 철광석 중 하나임.
#2. 그래프는 (가)∼(다) 자원의 지역별 생산량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단, (가)∼(다)는 각각 철광석, 고령토, 석회석 중 하나임.
몇몇 글자가 다르지만 사실상 같은 내용을 묻는 같은 문제다. 하지만 두 문제의 출처는 다르다. #1은 2023학년도 6월 모의평가 한국지리 7번, #2는 얼마 전 치러진 수원 A고의 한국지리 기말고사 1번 문제다. 문제뿐만 아니라 선지도 유사하다. 6월 모의평가에서 5개였던 선지가 A고 시험에선 4개의 ‘보기’로 바뀌어 제시됐을 뿐이다. 6월 모의평가 문제를 ‘외운’ 학생이라면 A고의 기말고사 문제도 바로 풀 수 있는 셈이다.
수원의 한 고교에서 한국지리 기말고사 문제가 대학수학능력시험·모의평가 기출문제와 거의 유사하게 출제돼 논란이 되고 있다. 학교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선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성의 없는 출제에 대한 제재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6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수원의 A고에서 최근 치러진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한국지리 22문제 중 20문항이 수능·모의평가 기출문제와 유사하게 출제됐다.
세계일보가 입수한 문제지를 보면 A고 2번 문제는 ‘다음 글은 주요 에너지 자원의 특성에 관한 것이다.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보기>에서 있는 대로 고른 것은? 단, (가)∼(다)는 각각 천연가스, 석탄, 석유 중 하나임.’으로, 2024학년도 수능 19번과 몇 글자만 빼고 동일하다. ‘옳은 것’을 찾는 문제에서 ‘옳은 것을 모두 고른’ 문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A고 문제는 (가), (나), (다)의 순서를 바꾸고, 선지 중 ’(다)는 (가)보다 전력 생산에 이용된 시기가 이르다’ 부분에서 (가)와 (다)에 해당하는 내용을 바꿔 제시하는 식으로 문제를 살짝 비틀어서 냈다. 하지만 문제의 큰 틀은 똑같아서 2024학년도 수능 19번 문제와 답을 외운 학생은 어려움 없이 풀 수 있다.
이밖에 3번 문제는 2022학년도 수능 17번, 4번 문제는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18번, 6번 문제는 2023학년도 수능 10번과 같게 나오는 등 총 20문제가 2020학년도∼2024학년도 수능·모의평가와 유사하게 나왔다. 유사한 문제는 2023·2024학년도 수능 각 4문제, 2022학년도 수능과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2021학년도 9월 모의평가 2문제 등으로, 문제와 도표를 그대로 갖다 쓰고 보기만 약간 단어를 바꿔내는 식으로 출제됐다.
해당 문제를 낸 교사는 평소 수업에서 수능·모의평가 기출문제를 모아놓은 교재를 사용했고, 이 교재에 있는 문제를 시험에 낸 것으로 전해졌다. A고의 학부모 B씨는 “선지까지 똑같아서 답만 외우면 고득점이 된다. 중간고사 때도 이런 식으로 문제가 출제됐다”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100점을 받은 학생이 많아 (내신) 1등급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두 문제도 아니고 20문제를 문제지와 똑같이 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교사가 아직도 현장에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학교 측은 학부모의 민원이 들어오자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었으나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문항 유사도는 상당히 높지만, 학생들에게 수능·모의평가 기출문제가 시험 범위라고 공지했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문제가 100% 똑같은 것이 아니란 점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교 평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경우 일차적인 심의·판단은 학교에서 하고, 그 결과에 학생·학부모가 불복하면 교육청에서 지도·감독할 수 있다. 학부모 B씨는 이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방침이어서, 추후 A고 문제는 교육청에서 들여다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교육 당국도 단순히 기출 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냈다는 것만으로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만약 학생들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특정 문제집의 문제를 그대로 내 일부 학생만 유리한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번 사안은 조금 다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모든 학생이 기출문제에서 문제가 나올 것이란 것을 알았다면 단순히 문제가 똑같았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교육계에선 규정상 문제가 없더라도, 도의적인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의 한 중학교 교사는 “시중 문제집 문제가 아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모의평가 기출 문제여서 문제를 제기하기 모호한 측면은 있다”면서도 “문제를 보니 교사의 업무를 게을리 한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도 “수능 기출문제를 활용하더라도 외워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이해해야 풀 수 있게 선지 등을 좀더 변형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며 “이런 식으로 내면 교사들이 성의 없다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 내신 문제와 관련된 논란은 최근에 또 있었다. 부산의 한 고교에서는 이달 초 치른 2학년 문학 기말고사에서 시중 문제집 문항이 그대로 출제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재시험을 치렀다. 학교 측이 30문항을 전수조사한 결과 13개 문항이 문제집에서 그대로 나오거나 유사하게 출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시험을 낸 교사들은 그동안 ‘전국연합학력평가(모의고사)’ 문제를 시험에 그대로 활용했고, 모의고사 문제를 시중 문제집이나 학원 등에서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 시중 문제집과 기말고사 문제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한 학부모는 “학생들이 내신성적에 예민한데 기출문제를 거의 그대로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것이 이런 이유 아니겠나”라며 “기출문제를 그대로 내는 등 성의 없는 출제에 대해 제재 방안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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