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북단 와인산지 ‘알프스의 테라스’ 알토 아디제를 가다/장미·스파이시향 게뷔르츠트라미너 품종 원조마을은 ‘트라민’/마을 대표 와이너리는 ‘칸티나 트라민’/‘에포칼레’ 세계 최고 게뷔르츠트라미너 등극
장미와 재스민이 한아름 담긴 꽃다발. 스파이시한 생강과 계피. 세이지와 라벤더의 은은한 허브향. 달콤한 허니서클(인동초)과 복숭아에서 패션푸르트, 망고, 리치 등 열대과일향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향들은 모두 모아 놓았네요. 코에 갖다 대자 온갖 향들이 폭발하는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연인의 달콤함 입맞춤처럼, 가슴으로 파고들어 영원히 잊히지 않을 흔적을 또렷하게 새기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화이트 품종입니다. 리슬링과 함께 화이트 와인 러버들이 애정하는 게뷔르츠트라미너의 ‘원조마을’은 알프스와 맞닿은 3000년 와인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최북단 와인산지 알토 아디제(Alto Adige)의 트라민(Tramin). 로버트 파커가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최초이자 유일하게 100점 만점을 준 세계 최고의 게뷔르츠트라미너를 만나러 트라민 마을을 대표하는 칸티나 트라민(Cantina Tramin)을 찾아갑니다.
◆트라민 마을에서 꽃 피운 게뷔르츠트라미너
알토 아디제는 제1차 세계 대전 전까지만하더라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었답니다. 오스트리아계 소수민족이 많아 이탈리아어와 함께 독일어가 공용어로 인정됩니다. 지명도 두개 언어로 불리는데 이탈리아어 알토 아디제는 ‘아디제 강 상류’란 뜻입니다. 독일어로는 ‘쥐트티롤(Sudtirol)’로 부르는데 ‘남부 티롤’이란 뜻입니다. 알토 아디제 바로 북쪽이 오스트리아 티롤 주이기 때문입니다.
알토 아디제의 주도 볼차노(Bolzano·보젠 Bozen)에서 만년설이 덮인 웅장한 돌로미티 산맥을 감상하며 남쪽으로 차로 20분을 달리자 동화속 풍경처럼 아담하고 예쁜 트라민 마을이 등장 합니다.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놓인 여러 레스토랑에선 많은 여행자들은 시원하게 칠링된 화이트 와인으로 뜨거운 여름의 갈증을 씻어냅니다. 이들이 많이 즐기는 품종은 게뷔르츠트라미너. 이유가 있습니다. 트라민이 게뷔르츠트라미너의 ‘원조마을’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어 게뷔르츠(Gewurz)는 향신료 또는 스파이시하다는 뜻.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트라민 지역에서 온 스파이시한 와인’이란 의미가 담겨 있으니 마을 이름이 품종 이름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품종의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트라민이 아닐 수 도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중동에서 건너와 지중해와 알토 아디제를 거쳐 오스트리아를 통해 북유럽으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거쳐 갔지만 이 품종이 터전을 잡은 곳이 바로 트라민이라 원조로 여겨지고 있답니다. 고대 품종이기도 한 게뷔르츠트라미너는 다른 품종들을 파생시킨 모계 품종으로, 리슬링도 이 품종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트라민 마을 대표하는 와이너리가 칸티나 트라민(Cantina Tramin) 이랍니다. 와이너리 입구로 들어서자 녹색 철골 구조물로 외관을 꾸며 마치 모던한 미술관 같은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네요. 2010년 리모델링하면서 포도밭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디자인으로 꾸몄는데 건축가 베르나 츠롤(Werner Tscholl) 작품으로 트라민 마을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1971년에 설립된 트라민은 이미 1898년부터 와인생산을 시작한 유서 깊은 조합 칸티나 소시알레 디 에그나(Cantina Sociale di Egna)와 합치면서 알토 아디제에서 가장 큰 조합 와이너리가 됐습니다. 디 에그나는 트라민 마을의 사제이자 나중에 오스트리아 의회 의원이 된 크리스티안 슈롯(Christian Schrott)이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알토 아디제의 와인 생산자들의 생계와 미래를 위해 만든 조합입니다.
와이너리 건물 2층으로 들어서면 통창을 통해 가파른 언덕을 따라 포도밭이 물결치듯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언덕의 포도가 대부분 게뷔르츠트라미너입니다. 칸티나 트라민의 와인메이커 빌리 스튀르쯔(Willi Stürz)와 마케팅·세일즈 디렉터 볼프강 클로츠(Wolfgang Klotz)가 먼 길 왔다면 반갑게 맞아줍니다. 볼프강을 따라 와이너리 맞은편 언덕에 조성된 포도밭 구경에 나섭니다. 어른 키보다 높게 퍼골라 방식으로 재배하는 포도밭 풍경이 이채롭네요. 칸티나 트라민은 생산량을 조절하기 좋은 기요(Guyot) 방식과 병충해를 극복하기 좋게 땅에서 높게 키우는 퍼골라(Pergola) 방식을 모두 사용하는데 퍼골라 방식으로 재배하는 구역에 평균 50년 수령의 가장 오래된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자란다고 하네요. 볼프강은 올드바인이 자라는 퍼골라 포도밭으로 데려갑니다.
손바닥 보다 훨씬 작은 포도송이들이 매달려 뜨거운 햇살을 받고 무럭무럭 익어갑니다. 볼프강이 포도알 몇 개를 따서 건네줍니다. 정말 꿀맛이네요. 올드바인 게뷔르츠트라미너는 10월중하순에 수확되며 칸티나 트라민을 세계 최고의 게뷔르츠트라미너 생산자 반열에 올려놓은 에포칼레(Epokale)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됩니다. 이 와인은 바로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가가 이탈리아 최초이자 유일하게 100점을 준 와인이랍니다. 에포칼레는 인근 해발고도 2000m가 넘는 리단나 몬테네베(Ridanna Monteneve) 광산으로 운반된 뒤 습도 95%, 섭씨 11도로 유지되는 깊이 4km의 광산에서 6~7년 숙성된다니 대단한 장인정신입니다.
이렇게 공을 들여 만든 와인은 과연 어떤 맛일까요. 벌써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볼프강과 와인메이커 빌리와 함께 칸티나 트라민의 대표 와인을 시음합니다. 볼프강은 최근 한국을 찾아 대표 와인들을 한국 와인업계 전문가들에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칸티나 트라민 와인은 나라셀라에서 단독 수입합니다.
◆파커가 만점 준 에포칼레
에포칼레를 잔에 따르자마자 벌써 백만송이 장미의 정원에 서 있는 듯, 화사한 장미꽃향이 폭발합니다. 이어 라벤더향과 살짝 달콤한 세이지 등 말린 허브향 따라 오더니 게뷔르츠트라미너의 정체성과도 같은 생강과 계피의 스파이시한향이 비강을 가득 채웁니다. 복숭아로 시작된 과일향은 잔을 흔들고 온도가 오르자 허니듀, 패션푸르트, 리치, 망고 같은 노란 열대과일로 바뀌며 입안에서 아로마를 폭발시키네요. 그럼에도 산도는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뒷에서 잘 뒷받침돼 좋은 밸런스를 보여주며 우아하고 섬세한 향들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짭조름한 미네랄도 풍성해 해산물, 그릴생선요리, 흰육류, 숙성치즈와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칸티나 트라민의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은 90%가 드라이하지만 2009년부터 세미 드라이도 만들고 있습니다. 에포칼레는 칸티나 트라민을 상징하는 와인이죠. 당도가 충분히 오를때까지 기다렸다 10월중하순 늦수확(슈페트레제·Spatlese)한 포도로 만드는 세미 드라이 와인입니다. 영할때는 약간 단 느낌이 있지만 6~7년의 병숙성을 거치면서 그렇게 달지 않고 굉장히 복합적이고 풍부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바뀌죠. 해발 고도 2000m의 광산에서 숙성하는데 일체의 에너지를 쓰지 않고 자연적인 조건에서 완벽하게 오랫동안 숙성시킬 수 있답니다. 굉장히 소량 생산하며 2차 마켓인 경매 등에서 아주 높은 가격으로 거래됩니다.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과 특히 알토 아디제 화이트 와인의 위상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생기발랄한 산도를 얻는 완벽한 환경
껍질이 두껍고 약간 핑크빛을 띠는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아주 잘 익는 품종이라 당도가 쭉쭉 올라가 알코올이 높게 나옵니다. 하지만 산도는 떨어져 바디감이 묵직한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특히 리치, 망고, 파인애플 등 달콤한 열대과일과 꽃향기에 달콤한 향신료 풍미까지, 아로마가 엄청나게 강렬하고 품종 이름처럼 계피, 생강 등 스파이시한향이 굉장히 풍부합니다. 게뷔르츠트라미의 최대 단점은 바로 낮은 산도입니다. 하지만 알토 아디제, 특히 트라민 마을의 게뷔르츠트라미너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산도까지 뒷받침된 완벽한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높은 해발고도, 서늘한 기후, 큰 일교차 그리고 클레이 토양 덕분입니다.
알토 아디제 포도밭은 해발고도 200∼1000m에 달하는 완벽한 산악지대에 조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일조량이 뛰어나 보르도와 비슷한 연평균 300일, 1950시간입니다. 알프스와 가깝지만 해발고도 4000m에 달하는 오르틀스 그룹(Ortles Group) 봉우리가 알프스의 매서운 추위를 막아줍니다. 또 남쪽 가르다 호수에서 매일 오후에 불어오는 남풍 오라(Ora)가 아디제 밸리를 통해 꾸준히 유입돼 밤동안 포도밭을 식혀줍니다. 오라는 ‘시간’이란 뜻으로 현지에선 오라가 불어오면 대략 몇시쯤인지 짐작할 수 있답니다. 자갈은 밤에도 열기를 내뿜지만 클레이 토양은 찬 기운을 잘 품기에 밤에 온도가 뚝 떨어질 때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낮에는 일조량이 좋아 당도가 잘 올라가지만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포도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좋은 산도를 잔뜩 움켜쥐기 때문에 산도까지 뒷받침되는 완벽한 게뷔르츠트라미너가 탄생하는 겁니다.
다양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샤르도네와 달리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적응 능력이 굉장히 떨어져 특정한 조건이 잘 맞는 지역에서만 재배됩니다. 특히 포도가 익는 과정에서 알코올에 필요한 당도를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각종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죠. 거의 대부분의 다른 포도는 이와 반대로 풍미를 먼저 만듭니다. 또 마지막 단계인 페놀까지 익었을 때 수확해야 굉장히 밸런스가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습니다. 더구나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쓴맛을 지닌 와인으로 만들어질 수 있어 완숙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이 모든 것이 완숙될때까지 기다리면 알코올이 너무 강해진다는 점입니다. 쓴맛이 없고 복합미가 좋고 자연 산미를 지니고 알코올이 너무 강하지 않은 게뷔르츠트라미너를 만들 수 있는 지역은 전세계에 몇 곳 안 되는데 알토 아디제가 바로 최고의 떼루아를 지닌 겁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완숙이 되지 않았을 때는 약간 떫은맛이 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체로 당도를 많이 남깁니다. 하지만 알토 아디제에선 포도가 완숙되면서도 좋은 산도를 얻을 수 있기에 굳이 잔당감을 남기면서까지 떫은맛을 보완할 필요가 없답니다. 트라민을 비롯한 알토 아디제에서 최고의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생산되는 것은 이 품종에 가장 적합한 신선한 떼루아가 빼어난 산도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드라이 또는 달콤하게
누스바우머(Nussbaumer)는 칸티나 트라민의 드라이한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상징하는 와인입니다. 크고 햐안 백합으로 시작해 아찔한 장미향이 피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말린 허브와 생강, 망고, 패션푸르트, 리치, 시트러스 제스트가 더해집니다. 이국적인 샤프론과 시나몬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며 풍성한 아로마를 펼쳐 보여줍니다. 생선, 훈제요리, 부드러운 치즈, 흰육류, 참치, 조개류 등 해산물과도 잘 어울립니다. 매콤한 아시아 요리와도 궁합이 좋답니다.
‘이탈리아의 미슐랭’ 감베로로쏘는 매년 최고의 이탈리아 와인을 평가해 와인잔 1~3개를 주는데 누스바우머는 글라스 3개인 트리비키에리를 20여차례 받을 정도로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합니다. 2022과 2011년을 비교 테이스팅합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영할땐 과일 풍미만 주로 보여주지만 숙성되면 과일향 이상의 복합적인 향들이 발현됩니다. 두 빈티지는 성향의 차이는 거의 없고 10년 정도 나이든 모습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10년이 지나자 굉장히 큰 풍미가 디테일하게 쪼개지면 복합미를 잘 발현하네요. 누스바우머는 알토 아디제에서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어떻게 이해하고 소화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와인으로 평가됩니다.”
기본급 게뷔르츠트라미너도 전형적인 장미향과 열대 과일향, 허브향, 약간의 스파이시한향, 생기발랄한 산도가 잘 구현된 드라이한 와인입니다. 아로마틱한 향들이 매운 느낌을 부드럽게 잘 감싸주기 때문에 스파이시한 아시아 음식과 좋은 궁합을 보입니다. 치즈, 패스트리도 추천합니다.
셀리다(Selida) 게뷔르츠트라미너는 조합 와이너리인 칸티나 트라민의 정체성을 잘 보여줍니다. 셀리다는 고대 독일어로 ‘작은 농장’을 뜻하며 조합원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습니다. 장미, 백합으로 시작해 말린 허브와 리치, 망고, 패션 프루트의 풍성한 과일향이 어우러집니다. 생선 전채요리, 돼지고기, 부드러운 숙성 치즈, 흰 육류, 생선과 훌륭한 페어링을 보입니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드라이에서 스위트 와인까지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로엔(Roen)은 레이트 하베스트(Late Harvest), 즉 늦수확한 포도로 만듭니다. 장미로 시작된 향은 열대과일과 말린 살구, 설탕에 절인 감귤껍질, 꿀로 이어지고 은은한 바닐향과 생강이 더해져 복합미를 한껏 끌어 올립니다. 다양한 디저트, 말린 과일, 치즈, 푸아그라와 잘 어울립니다.
테르미눔(Terminum)은 아예 당도가 집약된 귀부포도로 만든 스위트 와인으로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잘 익은 복숭아, 살구, 백합꽃으로 시작해 리치, 망고, 오렌지 제스트가 더해지고 온도가 오르면 꿀, 바닐라까지 피어오릅니다. 하지만 짱짱한 산도가 뒷받침돼 질리지 않는 단맛을 선사합니다. 건조 과일, 페이스트리 시나몬 스트루델, 크림 브륄레, 블루치즈와 빼어난 궁합을 보여줍니다. 배럴에서 6개월동안 천천히 발효해 농축된 맛을 선사합니다. 포도가 귀부균의 공격을 받아 껍질에 구멍이 뚫리면서 수분이 증발, 당도가 응축되는 귀부병은 알토 아디제에서 굉장히 드물게 일어나기 매우 귀한 와인입니다.
◆샤르도네와 소비뇽블랑의 맛있는 동거
알토 아디제 화이트 품종은 2024년 기준 피노 그리지오(12.1%), 샤르도네(11.2%), 게뷔르츠트라미너(10.9%), 피노블랑(10.5%)이 비슷한 규모로 생산됩니다. 소비뇽블랑(8.6%)도 비교적 비중이 크고 뮐러 트루가우, 케르너, 옐로우 머스캣, 리슬링, 실바너, 그뤼너 벨트리너 등도 조금씩 재배합니다. 특히 알토 아디제에는 라임스톤의 일부인 돌로마이트 토양이 풍부해 산도가 좋고 우아한 샤르도네가 자라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칸티나 트라민 샤르도네는 감귤류, 배로 시작해 파인애플이 더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닐라, 버터의 향도 잘 어우러집니다. 생기발랄한 산도가 돋보여 풍미 있는 생선과 해산물 요리, 신선한 버섯이 곁들여진 칠면조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오크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스틸 탱크에서만 발효 숙성을 하지만 볼륨감의 느껴질 정도로 복합미와 구조감이 뛰어납니다. 과실 풍미와 떼루아의 힘만으로도 샤르도네의 캐릭터를 아주 잘 살렸고 짭조름한 미네랄도 도드라집니다.
칸티나 트라민 소비뇽블랑은 파프리카, 그린구스베리의 스파이시한 노트, 짙은 꽃향이 어우러집니다. 아스파라거스, 생선, 해산물, 가금류와 잘 어울립니다. 뉴질랜드 등 다른 지역의 소비뇽블랑과는 결이 많이 다르네요. 보통 소비뇽블랑은 향에서 존재감을 크게 발휘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도 쉽게 품종을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반면 트라민의 소비뇽블랑은 향보다는 입에서 매력적인 아로마를 선사합니다. 공격적인 풋내가 없고 매끄럽고 완숙한 과일 느낌입니다. 일조량이 뛰어난 알토 아디제에서 소비뇽블랑이 어떤 스타일로 구현되는 잘 보여주네요. 단위면적당 소출량도 줄여 바디감을 더했습니다.
스토안 비앙코(Stoan Bianco)는 와인메이커의 창의력과 손맛이 한껏 발휘된 블렌딩이 눈에 띕니다. 샤르도네 65%, 소비뇽블랑 20%에 피노비앙코 10%와 게뷔르츠트라미너 5%까지 더해 칸티나 트라민의 장점과 알토 아디제 화이트 와인의 복합미와 잠재력을 극대화 시킨 것으로 평가됩니다. 금귤 등 시트러스 과일향이 살구, 복숭아, 배로 이어지고 온도가 오르면 파인애플과 바나나까지 풍성한 과일잔치가 펼쳐집니다. 여기에 싱그러운 토마토잎, 녹색 피망과 재스민, 미모사, 시트러스 제스트, 크리미한 질감과 짭조름한 미네랄까지 더해지니 와인을 처음 접하는 이들도 단숨에 반할 맛이네요.
하얀 육류, 버섯을 곁들인 매콤한 돼지고기와 잘 어울립니다. 3000ℓ 대형오크를 사용해 오크향을 최대한 절제하고 복합미만 끌어 올렸습니다. 스토안은 이 지역의 방언으로 ‘돌’이란 뜻이며 라임스톤과 진흙이 섞인 떼루아를 잘 보여줍니다. 2021과 2016년을 비교 테이스팅했는데 2021년이 확실히 소비뇽블랑의 톤이 강한 반면, 2016년은 소비뇽블랑 향이 줄면서 미네랄이 보다 풍성해지고 다양한 품종이 좋은 하모니를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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