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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부산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너무 반가워 우편함 앞에서 편지를 열어보니, 간단한 안부와 함께 사진 2장이 들어 있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제뢰등대 앞에서 찍은 사진과 19세기 프랑스 풍경화가 외젠 부댕의 ‘옹플뢰르의 등대’ 그림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외젠 부댕의 바다 그림을 좋아하는 내게 자랑하려고 프랑스 여행길에 ‘외젠부댕미술관’에 들러 찍은 사진인 듯했다. 새파랗게 젊었던 시절의 그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진 속의 친구도 나만큼 나이를 삼킨 듯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했다.

제뢰등대는 부산 감만시민부두에 있다. 1905년에 건립된 등대로 부산에선 가장 오래된 등대다. 100년이 넘은 등대로 높이는 6.9m다.

처음 그 등대의 이름을 들었을 때 무슨 등대 이름이 군사용 어뢰 같지? 등대 이름치곤 참 이상했다. 어원을 찾아보니 두견이(접동새) 제(?)와 여울 뢰(瀨)를 합친 이름으로, 등대가 세워질 그 당시, 그곳 주변에 ‘까치 여울’ 혹은 ‘오리 여울’이라 불리는 수심이 아주 얕은 위험한 여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등대는 아주 예쁘다. 100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건축미도 뛰어나 동화 속 참한 등대 같다. 처음엔 감만동 바닷속 해상 등대였으나 2001년 바다를 매립해 부두가 들어서면서 등대의 임무를 끝내고, ‘등대문화유산 제23호’로 영구보존 등대가 되었다. 그 위로 감만동과 영도 청학동을 잇는 부산항대교가 쭉 뻗어 있다. 부산에 가면 한 번쯤 가볼 만한 석양과 야경이 꽤 아름다운 곳이다.

프랑스 옹플뢰르는 프랑스 음악가 에릭 사티의 고향이라 관심을 가진 항구도시다. 가보지는 못하겠지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아지는 곳이다. 그림으로 옹플뢰르를 처음 만난 건 조르주 쇠라의 등대 그림이지만, 그 그림을 검색하다 외젠 부댕의 등대 그림도 알게 되었다. 부댕의 그림은 등대 말고도 바다 그림들 모두가 마음에 든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늘 그리워하는 바다 풍경이 그 그림 안에 다 들어 있다. 외젠 부댕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클로드 모네의 스승이다. 부댕은 제자들에게 그 당시 금기시했던 외부 그림 작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지금은 그를 인상파의 아버지라 부른다. 그의 등대 그림은 지금 보면 훨씬 더 좋다. 옛날 등대 맛이 새록새록 배어난다. 이 그림 말고도 쇠라, 호퍼, 몬드리안이 그린 등대 그림도 참 좋다. 그들 그림에는 등대가 가진 근접할 수 없는 적막과 고요, 순교자적 책임감과 명쾌한 성격 등이 고루 잘 녹아 있다. 애써 덧붙인 멋 부림 같은 게 없다. 그래도 등대는 뭐니 뭐니 해도 등대지기와 함께 크고 작은 에피소드 속에서 운명처럼 얽혀 살았던 옛 시절의 등대가 훨씬 더 신비하고 매혹적이지 않을까. 아마도 등대에게 물어도 십중팔구는 그 시절이 눈물 나게 그립다고 말하지 않을까. 우정도 오래된 우정이 더 진국이듯이.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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