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시대 - 기록, 살인, 그리고 포르투갈 제국/ 에드워드 윌슨-리/ 김수진 옮김/ 까치/ 2만2000원
유럽 대륙 서쪽 끝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발판 삼아 전 세계에 서양의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1497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경로(카헤이라 다 인디아)를 개척한 이후 눈부시게 꽃피기 시작해, 세상 온갖 상품이 수도 리스본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때 변하는 세상과 마주한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첫 인물은 포르투갈 왕립기록물보관소 소장인 역사가이자 철학자 다미앙, 다른 인물은 서사시 ‘루지아다스’로 국민 시인에 등극한 문인이자 방랑자인 카몽이스다. 책은 두 남자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세계들이 끝내 만났을 때 발생하는 충돌과 갈등, 그리고 이해와 수용의 과정을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담아낸다.
저자는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근대의 문이 막 열리기 시작할 즈음을 살았던 두 인물의 너무나도 다른 삶을 교차해 보여준다. 한 인물은 온갖 기록물에 파묻혀 살았지만, 폭넓은 시야로 변화하는 세상을 면밀히 살폈다. 다른 인물은 전 세계를 직접 떠돌아다녔으나,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시각을 고집했다. 두 남자 이야기는 훌륭한 서사를 선사하는데, 동시에 저자는 세계 구석구석이 연결된 현재에도 왜 사람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질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접할 때면 불안해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편협한 태도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본능일 것이다. 저자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극단적으로 분열되어가는 이 시대에, 모든 생각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았던 다미앙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바다 이야기를 가장 훌륭하게 다룬 작품에 수여하는 ‘프레미오 마레티카’ 상을 받았다. 전 세계로 사람과 물건, 사상과 갈등을 실어 나르는, 끝없이 이어진 바다와 강, 즉 ‘물의 시대’가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명징하게 증명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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