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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간첩법’ 논란 종지부 찍나 [편집인의 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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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04 21:00:00 수정 : 2024-08-04 20: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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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간첩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는 제법 많다. 배우 김수현이 바보로 가장한 북한의 남파 간첩 역할을 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흥행에서도 성공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던 세대는 ‘간첩신고요령’도 일찌감치 터득했다. ‘신발에 흙이 묻은 채 새벽에 등산복 차림으로 출현하는 자, 한밤중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북한 방송을 듣거나 무전을 치는 자, 군부대 주변을 배회하며 군부대 상황을 알려고 하는 자, 담뱃값 등 남한 실정에 어두운 자’를 보면 가까운 파출소나 경찰서, 군부대에 신고해야한다. 이런 글은 한때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도 붙어있었다.

 

이제는 안다. 이런 옷차림, 행동거지를 하는 간첩은 없다는 걸. 정보, 기밀을 염탐하는 공간이 디지털로 넓어지면서 더 이상 무전을 칠 일도, 뒷산에 지령문을 묻을 일도 사라졌다. 남북이 대치중인 한반도는 첩보전이 치열하다. 미·중 신냉전 구도까지 굳어지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4강 국가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유럽 정보기관 요원들도 활동중이다. 하지만 간첩 활동과 관련해 처벌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는 힘들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간첩 활동을 적발하기도 쉽지않지만 처벌 규정 또한 헐겁기 때문이다. 

 

‘간첩죄 처벌 피한 대북요원 유출범...다시 불붙는 간첩법 개정론’(8월1일자·배민영 기자)기사는 최근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에서 발생한 첩보요원 신상유출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정치권의 간첩법 개정 논란을 담았다. 이 기사는 ‘간첩법, 21대 국회 처리 사실상 마지막 기회’‘적국 아닌 외국에 기밀유출’도 처벌… 與는 찬성, 野는 신중’(2023년11월2일자·배민영·김현우·최우석 기자) ‘간첩법 등 ‘한동훈표’ 법안 향배 주목’(2023년12월26일자·배민영 기자)등 관련 심층기획물의 후속 보도다.

 

공공시설물 등에서 볼 수 있는 간첩 신고 포스터. 

◆간첩법 뭐가 문제길래

 

간첩법 개정 목소리가 커진 계기는 정보사 ‘블랙 요원’ 정보를 중국 동포에 넘긴 혐의로 구속된 정보사 군무원  A씨 사건이다. 해외에서 신분을 위장해 활동하는 ‘블랙 요원’ 정보를 유출시킨 것은 우리나라 정보 네트워크 뿐 아니라 당사자 신변까지 위협하는 중차대한 범죄 행위다. 하지만 A씨를 군형법상 간첩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그의 죄명은 ‘군사기밀누설’이다. 한국의 간첩죄 조항은 ‘적국’, 즉 북한에 국가 기밀을 누설하는 경우에만 간첩죄를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중국, 일본에 2·3급 군사기밀 등을 넘겨 구속됐다가 이미 출소한 정보사 공작팀장 황모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황씨는 군형법상 형량이 무거운 간첩 혐의가 적용되지않아 일반 이적(利敵)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간첩죄를 적용할 경우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국익을 내세워 우방국 사이에서도 첩보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감안해 ‘적국’(북한)으로 대상을 한정하지않고 ‘외국’ 또는 ‘외국 및 외국인단체’로 고쳐야한다는 것이 간첩법 개정 주장의 핵심이다. 실제 미국, 중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은 모두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OECD 회원국 중 간첩죄를 적국에 한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한 대표는 SNS에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은 지난 국회에서 법사위 제1소위에서 3차례나 논의되었지만 처리되지 못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법안 처리를 막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번번이 국회 문턱 못 넘은 이유는 

 

간첩죄 대상을 북한에서 외국으로 범위를 넓혀야한다는 주장은 역대 국회에서도 제기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 벽을 넘지 못했다. 2004년 민주당 최재천 전 의원이 발의한 이래 2011년 같은 당 송민순 전 의원, 2014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만우 전 의원, 2017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은재 전 의원이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했다. 김영주 전 국회부의장이 더불어민주당 시절에 2022년 8월15일 광복절을 기해 간첩법을 대표 발의했고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 이상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발의했다. 이 위원장은 본지에 “올해 대기업 전 임원이 국가기밀인 반도체 공장 설계도면을 빼돌려 중국에 복제공장을 통째로 세우려다 적발됐는데도 보석으로 풀려났다”며 “중국이 각종 정보 수집을 위해 비밀경찰서를 중식당으로 위장해 운영했는데도 처벌할 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법무장관 시절 관련법 통과를 촉구했다. 법무장관 시절 한 대표는 본지 인터뷰에서 “격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외국’과 ‘적국’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일 뿐”이라며 “형법 개정은 우리 국민과 국익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이라고 했다. 최근 간첩법 개정 논란이 재부상하자 한 대표는 “법안 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법 개정이)무산됐다”고 책임을 민주당에 돌렸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가운데)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홍장원 국정원 제1차장, 조 원장, 황원진 국정원 제2차장. 조 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하지만 이들 법안이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하지못한 것은 소극적인 야당 의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법안1소위 회의록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법무부와 달리 “법체계상 검토가 필요하다”며 반대 입장이었다. 군사기밀보호법 등 타법과 체계 정합성(整合性)을 해칠 수 있고 군사기밀의 범위, 우방국·비우방국에 따른 처벌 수위 조정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당시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인 박용진, 이탄희, 박주민 의원이 부정적 견해를 밝히면서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황정미 편집인

 

P.S. 취재한 배민영 기자에 물었습니다. 

 

-간첩법 관련 기획 기사를 여러차례 썼는데 관심을 갖게된 계기가 있나.

 

“수년 전 국내외 정세 분석에 남다른 식견을 갖고 있는 한 인사로부터 현행 간첩법으로는 간첩을 처벌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가안보를 강화하고 있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법망 미비로 간첩이 처벌 걱정 없이 활개치고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 2022년 8월15일 광복절 첫 심층기획 기사를 시작으로 관련 주제를 꾸준히 쓰고 있다.”

 

-21대 국회때 여야 의원의 발의에도 결국 법사위 소위를 못넘은 가장 큰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은 각종 부작용이 우려되는 쟁점 법안도 일단 당론으로 정하면 거듭 통과시켜왔다. 그런데 간첩법 개정안 심의 과정에선 법원행정처의 신중 의견에 기대 소극적 입장을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안보 개념이 북한만을 상정하던 시절 만들어진 간첩법 조항이 70년간 유지되면서 우리의 안보 의식도 기존 틀에 갇히게 된 영향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극단적 진영논리가 사회적 병폐로 지적되는 우리 사회에서 간첩이란 단어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도 법 개정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기밀누출 사건으로 간첩법 개정 논란이 다시 불거졌는데 이번에는 될 가능성 있다고 보나. 

 

“이번 사태로 간첩법 개정에 대한 여야 공감대가 커졌다. 법 개정 가능성이 커졌다고 생각하고, 국익을 위해서도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개정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법개정이 된다면 70년만의 입법 쾌거가 될 것이다.” 

 

 

관련기사

 

간첩죄 처벌 피한 대북요원 유출범… 다시 불붙은 ‘법 개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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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국 아닌 외국에 기밀유출’도 처벌… 與는 찬성, 野는 신중 ['간첩법' 이번 국회엔 통과될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101519830?OutUrl=naver

 

간첩법·이민청·국가배상법 … ‘韓 등판’ 힘입어 속도 낼까 [심층기획-‘한동훈표 법안’ 향배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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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등 ‘외국 위한 간첩행위’ 처벌 법제화 [심층기획-‘한동훈표 법안’ 향배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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