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수입 개방에 맞서 2004년 탄생
배·거봉포도로 시작, 오이 등 품목 확대
“市가 품질 보증” 당도 등 엄격히 관리
지역 농산물 지역 소비 ‘지산지소 운동’
연합사업단 통해 지역유통체계 구축도
“소비자 신뢰 유지… 강소농 늘게 할 것”
충남 천안시가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과 쌀을 고품질화하고 ‘하늘그린’과 ‘천안흥타령쌀’이라는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농민들의 소득을 높이고 있다. ‘천안시’ 하면 첨단산업 도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강소농업인의 비중이 높아 도시와 농촌이 어울려 발전하고 있는 도농복합도시다. 천안시는 2004년 농산물 공동브랜드를 개발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산물 수입 개방으로 농심이 들끓고 있을때, 천안시는 농산물 판매와 유통경쟁력 확보를 위해 고품질 농산물 공동브랜드를 선보였다.
단순하게 쌀·포도·오이·버섯·잡곡으로 분류돼 판매하던 농산물은 20년간 ‘하늘그린’, ‘흥타령’이라는 상표를 달면서 시장 경쟁력을 높였다. 농산물 수입장벽이 없어진 무역자유화 시대에 성공한 도농복합도시 천안시의 농산물 생산과 유통 전략을 들여다봤다.
◆하늘그린·흥타령쌀 브랜드 개발배경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에 이어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국제화, 개방화 물결과 FTA·다자간 자유무역협정(DDA) 협상으로 농업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0년대 초반 천안시는 고민했다.
공산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농산물 수입 시장 빗장을 풀 수밖에 없는 농업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선 무엇이 문제일까? 품질일까? 가격일까? 닥친 현실을 이겨나가기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 농업이 무너지면 식량안보가 무너져 국가의 근간이 흔들린다. 아무리 울어도 농업의 문제는 1차적으로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한다. 천안시는 수입농산물에 맞서 우리농산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고품질 농산물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피땀으로 가꾼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기 위해서 그 품격에 맞는 상표가 있어야 한다. 지역 특성을 표현하면서 소비자에게 신선함과 친근함으로 다가설 수 있는 공동브랜드는 없을까? 오랜 고민과 시민 설문조사 등을 통해 2004년 농업인 단체와 지역농협 그리고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브랜드 개발 자문위원회가 탄생시킨 천안 농산물 공동브랜드가 ‘하늘그린’과 ‘천안흥타령쌀’이다. 천안 우수농산물의 공동브랜드 하늘그린은 천안(天安)의 첫 글자인 하늘(天)과 녹색(Green)의 합성어로, ‘자연친화적인 농특산물’이란 뜻이 담겼다.
◆공동브랜드 사용과 관리
아무리 좋은 상표가 있어도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상표이고 브랜드로서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천안시는 공동브랜드가 전국적인 인지도와 소비자 신뢰를 얻기 위한 핵심적 요인은 철저한 품질관리와 차별화된 품질의 지속적인 균일성 유지에 있다고 봤다.
이 때문에 ‘하늘그린’과 ‘천안흥타령쌀’ 공동브랜드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문호는 개방되어 있지만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엄격한 품질관리를 위해 공동브랜드를 개발한 이듬해인 2005년 ‘천안시 농특산물 공동상표관리조례’를 제정했다. 가장 먼저 지역 대표농산물인 배와 거봉포도 가운데 생산에서 상품화 단계까지 고품질을 유지한 과일에 ‘하늘그린 배’, ‘하늘그린 거봉포도’라는 상표를 부착하고 천안시가 품질을 보증했다. ‘하늘그린’ 상표를 붙인 천안 배와 거봉포도가 소비자들로부터 고품질 농산물로 인정받아 좋은 가격에 팔려 나가자 천안시는 공동브랜드를 단 품목을 오이·호두·멜론·사과·버섯·토마토로 확대했다. 대표적으로 천안의 하늘그린 오이는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가장 높은 경락가를 받는 농산물이 됐다.
천안시 관계자는 공동브랜드 성공의 핵심이 “철저하고 지속적인 품질관리에 있다고 본다”며 “‘하늘그린’과 ‘천안흥타령쌀’ 하면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는 브랜드가 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마케팅에 승부를 걸다
1980년대 이후 산업고도화에 따른 경제력 신장과 함께 승용차를 이용한 국내 여행, 주말 나들이가 일상이 되면서 200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지역특산물 현지 구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안전하고 우수한 품질은 지역특산물을 구입하는 소비자와 생산농업인 간의 신뢰가 기본임에도 겉과 속이 다른 ‘속박이’가 성행했다. 천안시는 하늘그린 공동브랜드를 사용하는 농산물에서 철저하게 속박이를 없앴다.
하늘그린을 단 농산물은 겉과 속이 일정했으며 과일의 경우 기준치 이상의 당도를 지닌 상품에만 공동브랜드 사용을 허가했다. 소비자 신뢰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천안 하늘그린 하면 우선 믿고 구매해도 되는 농산물이라는 인식이 확산했고 판매량은 계속 늘었다. 대농은 없지만 강소농 중심의 부농이 많은, 도시와 농촌이 어우러져 함께 잘사는 도시로 향하는 발걸음이 시작됐다.
천안시는 고품질 농산물 공동브랜드 개발과 함께 ‘지산지소운동’을 적극 추진했다. 거봉포도는 입장·성거·직산 농협을 중심으로, 배는 천안배원예·성환·직산 농협을 중심으로 연합사업단을 조직하고 대형마트 등을 중심으로 천안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천안시민이 먼저 구매하는 유통체계를 구축했다.
하늘그린과 천안흥타령쌀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경부고속도로 야립홍보 간판을 설치하고 수도권 전철 및 시외버스 광고, 천안역 전광판 홍보, 수도권 대형 매장을 찾아가 이벤트를 벌이는 홍보 및 판촉전을 전개했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하늘그린 공동브랜드 성공을 기반으로 대도시 유통망을 확보하고 생산자인 농업인과 농협, 농업기술센터, 행정이 손잡고 노력한다면 타 지역의 특산품, 수입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천안 농산물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돈 버는 농업인 육성, 잘 사는 농촌을 위해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학교급식 공급 위탁운영… 8년 연속 1등급 획득
천안시는 농가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혀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경제적 이득을 얻게 하는 천안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천안조공법인)을 2014년 설립했다.
천안 지역 12개 농협의 공동출자로 설립한 천안조공법인은 천안시가 품질을 보증하는 농특산물 공동브랜드 ‘하늘그린’의 유통사업을 수행한다. 천안시장으로부터 학교급식센터 운영을 위탁받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일도 책임지고 있다.
천안조공법인은 118개 품목의 농산물을 천안 농민들과 계약재배를 통해 수급하고 학교급식 식재료로 납품한다. 지역에서 생산하는 최상품 농산물을 학교급식 식단에 올린다. 계절별로 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학교급식을 제공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는 “밥 먹으러 학교 간다”는 말이 나온다. 천안시학교급식센터 운영은 민관 거버넌스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천안조공법인은 농협중앙회 평가에서 올해까지 8년 연속 1등급 안심 학교급식 공급센터로 선정됐다. 학교·공공급식 경진대회 최우수상, 연합사업 판매 500억원 달성, 농협 산지유통혁신 대상 등 수상 실적도 화려하다. 최근 2년 동안 전국에서 29개 지방자치단체와 농산물 유통 기관이 천안조공법인 유통혁신을 배워가는 등 벤치마킹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농식품부와 농협이 2004년 조공법인 제도를 도입한 후 20년이 지나면서 2022년 기준 운영 중인 116개 조공법인 가운데 46개 조공법인이 적자를 기록했으며 자본잠식 상태인 법인도 33곳이나 되는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월30일 천안조공법인을 방문해 농협경제지주 대표이사 및 조공법인 대표 등과 함께 조공법인 활성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운영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천안조공법인은 학교급식과 함께 전국 최초로 지역 내 기업연수원·골프장·호텔·기숙사·구내식당 등으로 지역생산 농산물을 공급하는 길을 열고 있다. 2022년 취임한 홍승주 대표이사가 처음으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천안상록리조트와 흥타령쌀 공급계약을 맺고 공공급식 식재료 공급사업을 시작했다. 2년이 지난 현재 공공급식 식재료 공급처는 20곳으로 늘었다. 이 중 천안의 8개 대학은 구내식당에서 사용하는 식재료 전 품목을 천안조공법인을 통해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홍 대표이사는 “천안 우수농산물 공동브랜드인 ‘하늘그린’과 ‘흥타령쌀’을 중심으로 지역생산농산물 선순환 유통체계를 구축하고 전국으로 유통망을 확대하며 수출길도 확장해, 농민들이 가격 걱정 없이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유통혁신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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