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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도 찜통서 쉴 새 없이 작업… 물류센터 일용직 체험해보니 [밀착취재]

입력 : 2024-08-13 17:42:05 수정 : 2024-08-14 1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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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휴식권고는 ‘그림의 떡’

아침 9시 출근하자마자 땀 범벅
미니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업무
직원들 “오래 일하다간 죽을 수도”

‘33도 이상 매시간 10∼15분 휴식’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 유명무실
직원 300명에 ‘열대피처’는 10평 뿐

온열질환자 21.6% 실내서 발생
“환기 안될 경우 고위험… 대책 절실”

12일 경기 여주의 한 물류센터. 작업자들이 택배 반품 업무를 하는 지하 2층에 들어서자 뜨거운 열기가 불어닥치며 숨이 턱 막혔다. 실내 환기가 원활하지 못한 탓에 여러 사람의 땀 냄새가 한데 뒤섞여 코를 찔렀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택배 박스 특유의 냄새도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32도를 웃도는 실내에서 작업을 위해 낀 장갑 안쪽은 땀으로 흥건했다. 미니 선풍기 바람은 상체만 겨우 식힐 뿐 땀에 젖은 바지는 피부에 달라붙어 불쾌감을 더했다. 

13일 서울 송파구 동남권물류단지에서 직원들이 택배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발효된 이날 ‘찜통 노동’ 현장을 찾아 한 대형 물류센터에 일용직으로 취업했다. 맡은 업무는 택배 포장을 뜯어 새 상품으로 재판매할 수 있을지 혹은 중고로 분류해야 할지 판단하는 반품 처리 작업이었다.

 

더위는 아침부터 시작됐다. 수일째 지속되는 열대야로 밤사이 식지 못한 열기는 작업장 내부를 데웠다. 출근 직후인 오전 9시에 측정한 체감온도는 32.22도로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 상 관심 단계(31도 이상)에 진입했다.

 

체감온도는 1시간30분 만에 33도를 웃돌며 주의 단계(33도 이상)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시간대에 휴식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을 겨를도 없이 반품 처리는 계속됐다. 

 

12일 오전 7시20분. 서울 사당역에서 경기 여주 물류센터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노동자들이 몸을 싣고 있다. 이예림 기자

2022년 8월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566조는 폭염시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도록 규정한다. 고용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도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으면 매시간 10∼15분의 휴식을 권고했지만, 현장에선 이 모든 것이 유명무실했다. 

 

40대 여성 일용직 노동자는 매고 온 스카프로 얼굴의 땀을 연신 닦아냈다. “너무 더워서 정신이 쏙 빠져. 오래 일하다간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막 드는 거 있잖아.”

 

이날 점심 메뉴는 양식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파게티와 함박스테이크 등이 나왔다. 이예림 기자

드디어 찾아온 점심시간. 오전 11시40분부터 오후 12시25분까지 총 45분이 주어졌다. 부리나케 2층 식당으로 올라가 길게 늘어선 배식 줄에 합류했다. 모든 준비 과정을 마치고 자리를 찾아 앉으니 시곗바늘이 12시 정각을 가리켰다. 남은 시간은 25분여 남짓. 허겁지겁 잔반을 욱여넣으니 점심시간이 끝났다. 화장실도 못 간 채 “일하러 가야 한다”는 관리자의 부름에 다시 작업장으로 내려갔다. 

 

이 물류센터는 근로기준법상 마련된 1시간의 휴게시간 중 45분을 점심시간으로, 나머지 15분을 오후 휴게시간으로 이용한다. 이곳에서 4년 일했다는 정모씨는 “휴게시간을 쪼개서 주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폭염 기간만이라도 점심시간은 충분히 제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로 갈수록 상황은 더 악화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은 물류센터 내부로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오후 1시30분 체감온도는 33.07도로 더 올랐다. 무거운 택배 박스를 옮겨 나르던 중년 남성 노동자의 회색 옷은 땀에 흥건히 젖어 검은색이 됐다. 그는 “하루에 옷을 두 번 갈아입는다”고 멋쩍게 웃었다.

 

13일 서울 송파구 동남권물류단지에서 직원들이 택배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대 일용직 노동자는 “더위로 머리가 아플까봐 걱정”이라며 타이레놀을 꺼내 먹었다. 폭염은 4년 차 베테랑도 피할 수 없었다. 지친 얼굴로 “더워 죽겠다”를 중얼거리는 그의 얼굴 위로 땀방울이 후드둑 떨어졌다. 

 

오후에 주어진 휴게시간에도 온전히 쉴 수 없었다. 10분의 휴식 시간 동안 ‘열대피처’라 불리는 에어컨 시설로 가거나 2층 식당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실제 쉬는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열대피처’는 10평 남짓한 공간에 20여명만 수용할 수 있어, 200~300명에 달하는 층 전체 직원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현장에서 기댈 수 있는 건 몇 없는 대형 선풍기와 각자 자리에 놓인 소형 개인 선풍기뿐인데, 1만2560㎡(3800평) 규모의 거대한 작업장을 식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정씨는 “8월 들어 중간에 휴게 시간을 준 건 이번이 두 번째”라며 “폭염경보에도 찌는 듯한 더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온열질환은 옥외근로자뿐만 아니라 실내근로자에게도 치명적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5월20일부터 8월8일까지 실내 작업장·건물 등 실내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448명으로 전체의 21.6%를 차지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기와 냉방이 잘 안되는 경우 실내가 온열질환에 더 위험할 수 있다”며 “특히 사람들이 밀집된 실내의 경우 온도가 더 올라가니까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실내근로의 열악한 작업 환경이 이 물류센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가 지난달부터 자체적으로 운영한 ‘온도감시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7개 물류센터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이소, 쿠팡, 우편물류센터 등 주요 물류센터의 체감온도는 최대 35도까지 치솟았다. 

 

정로빈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차장은 “더 작은 물류센터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며 “당장 냉방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휴게시간이라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대판 대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물류센터에서는 아직 온열질환 문제와 관련해 환경 개선이 안 되고 있다”며 “개선하지 않고는 반드시 일을 치르게 될 것이란 절박한 생각을 가지고 바꿔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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