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대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 폐회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러한 구조적인 제약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과 같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며 작심발언을 내놓았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다. 각 대학이 신입생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되 선발 기준과 전형 방법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 총재는 “교육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나쁜 균형(bad equilibrium)’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이런 나쁜 균형에서 빠져나오려면 저자들이 제시한 파격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제안(지역별 비례선발제)은 정부 정책이나 법제도를 손대지 않더라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님들이 결단만 해주신다면 큰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나쁜 균형에서 벗어나는 단초를 제공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른바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교수들의 참여를 촉구했다.
한은이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은은 지난 3월 ‘돌봄 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돌봄노동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외국 인력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동계는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돌봄서비스 시장화를 부추기고 있다”라며 규탄 기자회견을 여는 등 강력 반발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이 총재는 “최저임금을 자영업자 입장에서 보면 부담이 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며 ‘최저임금 차등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농산물 물가를 둘러싼 논쟁도 일어났다. 한은은 지난 6월 ‘우리나라 물가수준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과일·채소의 수입 비중을 높여 농산물 물가 수준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농업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라며 직접 반박했다. 송 장관은 “농산물 수입과 유통 구조 개선 등 한은이 최근 보고서에서 제안한 것들은 정부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이며 (한은의 분석은) 농업 분야의 특수성과 국가적인 측면은 고려하지 않고 물가 중심으로만 단선적으로 본 것으로 판단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한은이 논쟁적인 화두를 이어나가는 이유는 이창용 총재의 ‘시끄러운 한은’ 기조에 따른 것이다. 그는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최근에는 국가를 위한 싱크탱크(think tank)로서 우리가 직면한 장기 과제들도 연구하고 대응방안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다”라며 “한은이 장기 구조개혁 과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 문제가 단기적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 격언을 인용하며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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