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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늦은 밤, 노모 집에 든다 저녁을 먹었다고 말을 넣어두었으나 노모는 기연히 뭇국을 끓여 상을 봐두었다 밥을 안 먹은 사람처럼 밥 한 그릇을 비운 나는 노모가 막 끓여 내오는 돼지감자 삶은 물을 마신다 후룩 후루룩, 노모와 마주 앉아 시시콜콜 얘기 나눈다

 

여차여차하여 두어달 전에 낸 책 얘기를 꺼내는데 노모는 알아듣지 못한다 제가 그 책 안 드렸어요? (중략) 마침 가방에 있는 책을 꺼내 노모께 드린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노모도 나도 제각기 방에 든다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하는데 난데없이 글 읽는 소리 들려온다 (중략)

 

쪼맨허게 읽었는디 드키더냐?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떠듬떠듬 또박또박 노모의 책 읽는 소리가. 불을 끄고 누워 잠에 든 척 그 소리를 가만히 듣는 밤. 길고 긴 밤.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쩐지 겸연쩍으면서도 동시에 더없이 뜨거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더 귀를 세우지 않았을까. “드키는 소리”를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삶이 고단할 때마다 약처럼 꺼내어 조금씩 아껴 들으려고.

 

"드키다”라는 말은 ‘들리다’를 이르는 어느 지역의 방언이리라. 그렇지만 이는 마치 시 속 노모만의 특별한 말버릇처럼 귀하고 사랑스럽다. “쪼맨허게 읽었는디 드키더냐?” 하는 말 역시 그윽히 아름답다. 짤막한 한마디에서 사람의 순실한 마음을 짐작하게도 된다.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은 채 아들의 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마음. 그렇지만 옆방의 아들이 행여 잠에서 깰까 다만 쪼맨허게, 쪼맨허게 읽어 내리는 마음.

 

그러고 보면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다 쪼맨허다. 귀를 기울일수록 또랑또랑해진다. 거대해진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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