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진흙탕 싸움 지속
아티스트·팬들 마음 헤아려
K팝 미래 지킬 선택 내려야
지난 11일 뉴진스의 다섯 멤버가 긴급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평균 나이 18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한 어조로 자신들이 느꼈던 부당함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엄마처럼 따르던 민희진 대표의 갑작스러운 해임, 따돌림을 포함한 부당한 사내 관행 등 가슴속에 쌓아둔 응어리를 하나둘 풀어냈다.
다섯 명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묻어났지만, 이들의 어조는 단호했고 메시지는 선명했다. 두렵고 막막했던 연습생 시절부터 자신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또 소통에 진심이었던 민 대표의 복귀가 모든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의 뜻이 관철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한 명이 말하고 나머지가 침묵하는 통상적 방식이 아니라, 모든 멤버가 균등하고 자유롭게, 여기에 영어까지 섞어 글로벌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지켜보던 많은 사람은 안타까운 감정을 넘어 공감과 연민을 느꼈다.
멤버들의 메시지는 의외로 간단했다. 아티스트들이 본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막내인 혜인은 하이브 경영진을 향해 ‘특별히 더 바라는 게 없고,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자’는 사려 깊은 제안을 내놓았다. 협력의 기본 원리를 이토록 쉽게 풀어내는 어린 아티스트의 재능에 전율이 느껴졌다. 진작 하이브 경영진 중 누군가의 입에서, 어른의 책임감에서 나왔어야 할 명쾌한 해법이었다.
지난 수개월간 모기업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어도어의 ‘경영권 찬탈 논쟁’은 점입가경이었다. 하이브 이탈을 모색한 민 전 대표, 대표이사 해임 사유가 없다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 법원 결정을 우회한 하이브의 민 전 대표 기습 해임, 주주간계약의 중대한 위반이라며 소송에 나선 민 전 대표의 대응까지, 고래로 빙의한 어른들의 진흙탕 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졌다.
문제의 본질은 경영권 찬탈 논쟁도, 어른들의 감정싸움도 아니다. 본질은 아티스트들 그리고 이들을 떠받치는 팬덤이 느끼는 불안함과 부당함이다. 그저 아티스트가 좋아서 ‘버니즈’란 이름으로 결집한 뉴진스 팬덤은 아티스트들이 느끼는 참담함에 공감하며, 하이브의 각성을 촉구하고 문체부의 개입을 요청했다. 행동주의의 닻을 올린 셈이다. 이들은 당연히 이럴 자격이 있다.
포토 카드를 매개로 음반 수십장씩 사게 하고, 팬덤의 헌신 비용으로 마케팅 비용 절약하고, 값비싼 콘서트 티켓으로 수익 창출에 매진할 때는 ‘팬덤 제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코어 팬들의 간절한 외침에는 귀 닫는 하이브의 태도, 이게 진정 글로벌 K팝을 주도하는 리더 기획사의 품격일까?
최근 국민연금의 지속성을 둘러싸고 10대들의 자기주장이 가시화되고, 어른들 중심의 논의 구조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부정적 감정들이 터져 나오는 분위기 속에서 어른들 일이라고 뒷짐 지고 기다리는 건 옳지 않다는 젊은 세대의 자기 확신이 커지고 있다. “어른들 일이라고 맡기고 계속 기다리기만 하기에는 너무 저희 다섯 명의 인생이 걸린 문제거든요”라는 혜인의 말을 곱씹어봐야 할 이유이다.
어도어가 제작과 경영을 분리해 멀티레이블 시스템을 보완했으므로 긍정적이라는 평이 있는 반면, 아티스트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모기업의 태도가 문제라는 부정적 평가도 만만치 않다. 라이브 방송에서 뉴진스 멤버들은 각 레이블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다양한 변주를 허용해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피력했다. 누구의 의지를 반영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들만의 깊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경영과 기획의 분리라는 형식 논리가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구성원들의 신뢰와 동의가 부족하다면 이 형식 논리는 되레 조직을 파괴하는 촉진제가 될 뿐이다. 민희진을 복귀시키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아티스트들의 마음을 헤아리라는 말이다. 진정 옳다는 확신이 있다면, 뉴진스의 마음을 또 이들의 거울인 팬덤의 마음을 움직이기 바란다.
이 사태가 아티스트 간, 팬덤 간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젊은 세대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특히 BTS 정국의 ‘아티스트는 죄가 없다’는 발언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K팝의 근간이자 심장인 협력적 전통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K팝은 우리의 미래다. 이 미래를 지키는 일이 어른들의 감정싸움보다 수백 배는 더 중요하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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