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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의 문화·독재·민주화 격랑… ‘혼란의 땅’ 스페인사

입력 : 2024-09-28 06:00:00 수정 : 2024-09-26 20: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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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스페인사/ 윌리엄 D. 필립스 주니어·칼라 란 필립스/ 박혜경 옮김/ 글항아리/ 2만2000원

 

스페인의 역사는 풍부한 다원성과 그로 인한 갈등 및 조화로 점철돼 있다. 로마 치하의 ‘히스파니아’ 시대를 거쳐 서고트족이 유럽 반대편에서 건너와 왕국을 세우더니, 서고트족을 몰아낸 무슬림이 몇 세기간 반도를 지배했다. 두 명의 걸출한 가톨릭 왕이 레콩키스타를 끝마쳐 반도를 되찾은 이후에는 신대륙과 동남아시아까지 세를 넓힌 스페인 제국이 성립했으며, 근세 들어서는 유럽의 이류 국가로 전락해 내전과 오랜 독재를 겪은 후 현대의 민주주의 입헌군주정이 들어섰다.

이 복잡한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변화무쌍한 기후 조건과 반도의 지리, 민족의 다양성, 외부와의 끊임없는 교류, 두 대륙과 두 바다를 잇는 교량으로서의 지정학적 중요성, 가톨릭과 이슬람의 상호작용 등 수많은 주제를 다뤄야 한다.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의 약사 시리즈 중 한 권인 이 책은 평생 스페인을 연구한 학자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쉽고 명쾌하게 쓰였으며, 광범위한 주제를 세심하게 아우른다.

윌리엄 D. 필립스 주니어·칼라 란 필립스/ 박혜경 옮김/ 글항아리/ 2만2000원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위치한 이베리아반도는 유럽 북부에서 온 켈트인과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온 이베리아인이 선주민과 섞여 독자적인 농업, 상업 문화를 영위하고 있었다. 기원전 800년경엔 페니키아인을 시작으로 그리스인, 카르타고인이 반도에 진출했으며, 이후 카르타고와 로마가 충돌하는 장이 된다.

456년엔 서고트족이 이베리아반도를 손에 넣으면서 서고트왕국을 건설한다. 711년부터 1492년까진 무슬림이 이베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했고, ‘가톨릭 공동왕’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등장해 카스티야·아라곤 연합 왕국을 세우고 이슬람 왕을 몰아낸다.

이후 합스부르크왕가가 혼인관계를 맺으면서 스페인 왕조에 합류했으며,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나라를 넘겨준 적도 있다. 스페인은 결국 독립하지만 군부와 왕과 의회 그리고 몇몇 독재자가 차례로 권력을 잡았으며, 1936년엔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다.

3년에 걸친 국민군과 공화군의 전쟁 끝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이끄는 국민군이 승리를 거머쥐지만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기까지 오랜 독재의 그늘이 드리웠다. 프랑코의 사망 이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국왕으로 즉위함으로써 부르봉왕가 입헌군주정이 부활하면서 민주주의가 스페인에 들어선다. 하지만 바스크와 카탈루냐가 정서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분리주의 운동을 이어나가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혼란이 아직 스페인에 남아 있다. 프랑코 독재 시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청산할 것인지도 아직 풀지 못한 과제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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