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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불행한 삶 너머 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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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03 22:50:47 수정 : 2024-10-03 22: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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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100년 동안 수많은 미술양식이 현대미술이란 이름으로 펼쳐졌다. 이것들 중 가장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한 양식은 무엇일까. 20세기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들의 현실적 사고가 팽배했던 시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꿈과 환상을 쫓은 초현실주의가 가장 오래 지속됐다. 초현실주의는 1924년 시인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선언’으로 시작되어 20년 동안 전개됐다. 1차 세계대전 후의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예술을 의도했고, 꿈처럼 낯설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목했다.

꿈과 환상의 이미지를 쫓았던 시도는 초현실주의자들만이 아니었다. 초현실주의가 탄생하기 이전이지만 꿈에서나 볼법한 이미지에 매료된 화가가 앙리 루소였다. 그는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 49세에 본격적인 화가로 등장했다. 평생 미술수업이라곤 접해 본 적 없는 그였기에 당시 일부 이론가들이 그를 이론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화가로 평가했다.

앙리 루소 ‘꿈’(1910)

이 그림에서 루소는 정글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옅은 분홍색과 파란색 꽃들이 여기저기 활짝 폈지만 뾰족한 꽃잎 탓인지 아름답기보다 다소 위협적인 느낌을 준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위의 새,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코끼리와 사자, 정글의 기기묘묘한 식물들도 함께 한다. 뱀을 유혹하려 피리 부는 사람 모습이 섬뜩하고, 붉은색 소파 위 누드 여인은 느닷없고 의아하다. 꿈에서나 볼법하다.

루소는 정글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평소 자주 찾던 식물원에서 영감을 얻어 묘사했다 한다. 그 정글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패배하는 사회 분위기를 은유하려 했다. 그래서 정글 같은 사회의 위협적인 장면과 무시무시한 동물들을 그렸지만, 자신을 구원해줄 이상형 여인도 꿈꿨다.

루소는 극도의 가난으로 생활이 무척 곤궁했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이런 루소에게 그림은 하나의 위안처였고, 현실 너머를 동경하는 꿈의 세계였다. 한 예술가가 불행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시도였던 꿈과 환상의 이미지가 10여년 후 전쟁이라는 인류의 비극적 상황과 만나면서 초현실주의로 탄생했다.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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