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농구(NBA) 현존 최고의 득점기계 케빈 듀랜트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단거리 선수 우사인 볼트. 그리고 나. 일면식도 없는 우리의 공통점은 아킬레스건 파열을 겪었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이들은 극복했고, 난 이제 이겨내야 할 차례라는 것뿐이다.
풋살을 하다가 다쳤다. 섀도 스트라이커로서 패스를 받아 몸을 빙글 돌려 수비를 제치고 상대 진영으로 치고 달리려던 순간, 오른쪽 발목에 얻어맞은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쓰러져 있다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오른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 날 풋살의 세계로 인도한 설이 아빠 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발뒤꿈치를 차였어요.”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종아리를 눌렀다. “아”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이 나왔다. 그는 엑스레이 촬영 결과물을 보며 ‘정형외과 전문의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킬레스건 파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통증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믿기 어려웠다. 반깁스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오전 1시30분, 5시간 뒤 일어나 일본 출장을 떠나야 했다. 잠을 설친 채 출국길에 올랐다.
농구팀 울산 현대모비스 일본 전지훈련을 취재하는 동안 얼음을 다리에 달고 지냈다. 양동근 코치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 뒤에서 찬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며 ‘아킬레스건 파열이 100%’라고 했다. 난 분명 뒤에서 차였다고 우기며 설이 아빠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다. 충격적인 답을 들었다. 내가 스스로 넘어진 거라고. 이제야 아킬레스건 파열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에 갔다. 하필 오른발이라 운전도 할 수 없었다. 버스를 탔다. 노약자석을 비워줬다.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면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지하철로 갈아타러 가는 길. 한 발 한 발 힘겹게 떼며 걸었는데 눈앞에서 지하철이 떠나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닫히는 지하철 문을 향해 목발을 뻗을 뻔했다.
자기공명영상(MRI) 결과 아킬레스건 파열이 맞았다. 아킬레스건 최고 전문의를 자부하는 서상교 원장은 시간이 지나면 끊어진 힘줄이 엉덩이까지 말려 올라갈 수도 있으니 빨리 수술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하반신 마취를 한 뒤 발목 6∼7㎝를 갈라 파열된 아킬레스건을 봉합했다. 입원 중엔 불편한 다리와 손에 꽂아둔 바늘 때문에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다녀오지 못했다. 밥 먹기도, 핸드폰을 보기도 불편했다. 뱀뱀이 아빠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 후에도 이동이 쉽지 않았다. 집 안에서는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다닌다. 지하철은 이용할 엄두도 안 난다. 버스를 타지만 오르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 목발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한다. 커피 등 물건을 들고 걸을 수 없다는 얘기다. 2∼3분만 이동해도 팔과 겨드랑이가 아파 잠시 쉬었다 움직인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다리에 피가 쏠려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외부 일정을 소화하기 힘들어졌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만저만 불편함을 주는 게 아니다. 이런 생활을 해야 하는 기간은 8주. 야속한 시간은 이럴 때만 천천히 가겠지. 역시 건강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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