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확률 싸움이니까요. 희생번트만 잘 댔다면 안타 없이도 추가점을 낼 수 있으니 희생번트를 선택했습니다”
삼성 박진만 감독이 23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서스펜디드로 중단된 1차전과 이어 열린 2차전을 모두 패배한 뒤 남긴 말이다. 1-0의 리드를 안고 시작한 1차전은 7회 폭투 2개와 적시타 2방을 맞고 4실점한 끝에 5-1로 패했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이어진 2차전은 12안타로 KIA(10안타)보다 2안타를 더 치고도 집중력 부족에 울며 3-8로 패했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1,2차전을 모두 잡은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은 20회 중 18회로, 그 확률은 90%에 달한다. 이는 곧 삼성이 10%의 확률에 몰렸다는 얘기다.
박 감독은 확률을 얘기했지만, 정규시즌 내내 희생번트를 성공한 게 딱 1번인 김영웅이 모든 순간이 승부처인 한국시리즈에서 희생번트를 성공시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정규시즌 28홈런, 플레이오프에서 2홈런까지 올 시즌 통틀어 30홈런을 터뜨린 김영웅이 희생번트를 잘 댈 확률과 강공으로 안타 혹은 최상의 시나리오로는 홈런을 때릴 확률 중에 높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은 그 무게감이 다르기에 평소에 하지 않던 파격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삼성이 1-0으로 앞선 6회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재개된 1차전에서는 강공을 해야했다. 안 그래도 허약한 불펜진이 최대 고민인 삼성으로서는 희생번트에 이어 땅볼 혹은 희생플라이로 1점을 더 추가해 2-0이 된다 한들, 역사에 남을만한 강타선으로 무장한 KIA 상대로는 그 리드가 안심할 만한 게 아니다. 허약한 불펜진을 생각하면 1점이 아닌 2점, 3점을 낼 수 있는 대량득점을 내야만 이길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책이다.
1차전이 중단되고, 재개되기까지 40시간이 주어질 때까지 어떻게 작전을 내는 게 가장 합리적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박 감독이 선택한 작전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희생번트였다. 결국 김영웅은 희생번트를 실패하면서 찬물을 끼얹었고, 후속 타자 박병호가 삼진, 이재현이 투수 앞 땅볼로 물러나면서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펼쳐지고 말았다.
희생번트 작전 실패로 1-0 불안한 리드를 이어간 삼성은 결국 7회말 수비에서 사달이 났다. 베테랑 중에 베테랑인 임창민-강민호 배터리가 2사 2,3루에서 연이은 폭투를 내주면서 안타 없이 1-2 역전을 허용한 것. 기세가 오른 KIA는 소크라테스와 김도영의 연속 적시타가 터지면서 4-1까지 달아났다. 거기에서 1차전 승부는 물론 2차전 승부까지 결정이 난 셈이다.
2차전까지 패배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박 감독은 “두 게임 다 아쉽다. 광주에 와서 1승 1패가 목표였다. 마이너스 1개라고 생각하고 잘 쉬고 재정비 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차전에 1차전 영향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1차전에서 KIA에 맞아서 역전당한 게 아니라 폭투로 경기를 내줘서 분위기를 뺏겼다. 2차전까지 분위기에서 이겨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박 감독은 이어 “우리의 승리 패턴은 장타다. 2차전은 안타가 적지 않게 나왔다. 안타 수는 대등했으나 결정적인 상황에서 타점이 안 나왔다. 단타 위주로 하니까 어렵게 경기했다"며 "(3차전부터) 대구 가니까 장타를 생산해서 흐름을 다시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4차전이 치러지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는 홈런이 잘 나오는 구장이다.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은 대구에서 치러진 1,2차전에서 홈런포만 5방을 터뜨리며 2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으로 2연승을 거뒀다. 그러나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는 삼성만 가는 게 아니다. 삼성 타선보다 파괴력은 물론 세밀함도 몇 수는 위인 KIA도 간다. 장타를 생산할 수 있는 ‘확률’은 KIA가 더 높다. 대구에서 반격은커녕 시리즈가 끝날 수도 있는 상황에 몰렸다. 희생번트 실패 하나가 한국시리즈 전체를 그르치게 생겼다. 이는 명백한 박진만 감독과 삼성 벤치의 패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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