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화 된 세계 질서 속에서 윤석열정부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계’를 주축으로 한 외교안보 정책을 펼쳤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방향성이 불가피했음에 동의하면서도 한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다운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윤 정부가 전반적으로 내걸었던 외교안보 정책 방향성에는 충실했다고 본다”며 “유사 가치 국가들과 협력과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를 확립했고, 국제사회와 공조해 비핵화 등의 가치를 지향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다만 윤 정부가 제시한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구호의 실질성은 다소 약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다른 국가들이 우리를 정말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는지, 담대한 구상 등의 각론이 이행됐는지 등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분석이다. 가령 국제통화기금(IMF) 내에서 지분을 얼마를 늘린다든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발언권을 늘릴 조치들을 통해 우리의 목소리가 커져야 북한 파병 등의 문제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더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차 센터장은 “글로벌 중추국가라면 국제사회가 그만큼 한국에 귀를 기울여줘야 마땅한데 최근 주변국 관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며 “러시아나 중국의 경우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든 신경을 안 쓰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 목소리의 영향력, 협상의 지렛대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그 노력을 위해 외교적 선명성을 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북·중·러 관계 관리에 대해 차 센터장은 “일각에서 왜 더 달래지 않았느냐고 비판하지만 북러 교류 문제 등에서는 우리가 좀 더 과감하게 선제적 조치를 했어야 한다”며 “주요국들의 기세에 눌려버렸다는 점에서 아직은 우리가 한반도를 벗어난 시각으로 국제적 의제설정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원칙은 충분했고, 의욕도 넘쳤지만 실질적으로 주변국들을 우리가 바라는 상태로 이끌어나가려면 “’전략적 명확성’을 더 강화하는 방안들도 생각해볼 때”라고 차 센터장은 덧붙였다.
중·러라는 강대국,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핵 사용 태세를 갖춘 북한과 마주한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전선에 매우 근접해 있다. 자원 빈곤 국가로서 경제 대외의존도가 80% 수준이라 국제 통상 없이 국민의 평안과 번영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우리의 자구를 위한 필요 조건이지만 북·러·중이 우리 옆에 너무 가까이 있는데 적대시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전 교수는 “동북아시아 진영화 추세가 악화되고 남북 군사 경쟁도 치열한 와중에 힘만 가지고 평화를 유지하려 하다간 전쟁으로 갈 수 있다”며 “무장력 강화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닌 진짜 평화로 연결되도록 하려면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적대 관계끼리 완전히 분리됐던 냉전 시대와 달리 신냉전인 지금은 모든 나라가 섞여있기 때문에 냉전기 외교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제언이 이어졌다.
전 교수는 “탈냉전이 되면서 모든 국가가 경제·교류를 하던 중에 약 10년 전부터 중·러의 부상으로 강대국 세력 경쟁 체제가 다시 나타난 것“이라며 “미국 혼자 패권을 쥐었던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전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영향력이 글로벌 사우스(아프리카 등 비서구권 개발도상국)에는 미치지 못하며, 서방 진영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도 40개 미국 동맹국 외에 150개 나라는 참여하지도 않는다. 강대국이 아닌 이런 나라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을 비판하는 유엔 결의에는 참여해도 대러 경제 제재는 별개의 문제로 본다. 국익을 위해 양쪽 모두와 거래하겠다는 입장을 지킨다.
이런 세계에서 진영 외교만 하기에는 잃을 것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전 교수는 “아주 열악한 안보 환경 속에서 경제적 기반이 제한적이고 취약한 우리나라는 동맹을 통해 안보를 다지되 외연을 넓혀 다변화 된 외교를 하지 않으면 번영하기 힘들다”고 정리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미래문명원)도 “한반도라는 대단히 취약한 입지의 한국은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국가지만 일본 같은 지정학 위치는 아니다”며 “문재인정부의 외교 노선을 거꾸로 뒤집는 것보다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 역할을 좀 더 해야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미국 쪽으로 좌표를 이동하되 너무 같은 결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북·중·러 관리에서 “정부가 상당히 거칠었다“고 한 안 교수는 일본과의 매듭 풀기 역시 “긴 호흡으로 해결할 문제인데 과연 다음 정부가 들어서서 계승될 수 있을지 아쉬움이 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한일 갈등 해법 등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자본을 잃어감을 각오하면서 한 것이니 어떤 점에서는 용기”라면서도 “용기라는 게 언제나 지혜가 동반돼야 하는데 그 점에서는 이 또한 거친 행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미·일 협력에 치중하느라 이를 반중 전선으로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은 너무 부족했다는 게 안 교수의 지적이다. 안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노선만 좀 교정하는 정도로도 미국과 관계를 좋게 풀어나갈 수 있었는데, 현 정부는 미국에 ‘노(No)’라는 게 없을 정도로 갔다”며 “한국이 일본과 갑자기 협력한 것에 미국이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른 비판적 입장이 아닌 일관된 ‘반중’이 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떡하라는 것이냐“고 했다.
결과적으로 문 정부와 윤 정부 모두 다소 편향된 외교를 통해 업데이트 되지 못한 세계관의 한계를 보여줬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안 교수는 “문 정부 때 사람들이 지금도 탈냉전기라고 낭만적인 착각을 했다면 윤 정부에서는 지금이 20세기 냉전 시대인 줄 잘못 알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국익 중심 사고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너무 위험한 행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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