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문민 통제, 김영삼정부에서 시작
계엄 수렁에 빠진 軍 신뢰 회복 위해
민간 국방장관 임명은 시대적 요구
얼마 전 한 후배 기자가 책을 펴냈다며 소식을 전했다. 12·3 비상계엄의 전말을 다룬 취재기였다. ‘계엄君 계엄群’이란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계엄君 윤석열’과 ‘김용현 군부’가 어떻게 계엄의 씨앗을 품고 싹을 틔웠는지를 파헤쳤다. 저자는 군에 대한 문민 통제 실패를 계엄의 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고는 군의 위헌적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문민 통제 복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는 말 그대로 군 출신이 아닌 민간인이 군을 통제한다는 의미다. 정점에 군을 지휘·감독하는 국방부 장관이 있다. 이러한 군 문민 통제는 군사정권을 종식하고 1993년 출범한 김영삼(YS)정부에서 시작됐다. 당시 김영삼정부는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과 군 전력증강사업인 ‘율곡 비리’ 수사를 통해 군 문민화를 이뤄냈다. 바로 꽃피워진 건 아니다. 김영삼정부에서 하나회 척결을 주도한 권영해 전 국방부 장관(예비역 육군 소장)의 바통을 건네받은 이가 이병태 장관(예비역 육군 중장)이었다. 당시 보훈처장이던 그의 장관직 발탁을 점친 이는 거의 없었다. 그가 군 개혁의 표적이던 하나회 출신이었던 탓이다. “하나회를 범죄집단 취급할 때는 언제이고, 하나회 출신 장관이라니….” 그의 장관 임명 소식에 군은 아연실색했다. 이 장관 등장으로 YS의 하나회 척결은 한동안 갈팡질팡했다. 개인적 친분과 정치적 목적만을 위해 군 개혁을 희화화했다는 조소가 넘쳐났다. 숙군(肅軍)의 대의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후 오랫동안 군은 정치에 오염됐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굳어진 ‘예비역 장성=국방부 장관’ 임명 공식은 더욱 고착화했고, ‘군맥’ 형성과 ‘나눠 먹기 인사’ 등 폐해는 반복됐다. 자연 군 문민 통제의 원칙은 뒷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충암파’, ‘용현파’ 등으로 불린 특정 군맥이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12·3계엄 사태로까지 번졌다.
6월3일이 대선이다. 출범하는 새 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는 12·3계엄 수렁에 빠진 군의 신뢰 회복일 것이다. 국회를 침범한 죄를 씻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에 충성하는 정치 중립의 군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차대한 과업이다. 그러려면 더는 고위 장성 출신 국방부 장관 임명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대신 학자, 국회의원 등 민간인의 국방부 장관 등용이 거론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주변에서 “국방부는 민간인이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이미 문민화가 완성됐다”거나 “문민 국방부 장관은 시기상조”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대선 승리 시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예비역들의 ‘빌드업’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이틀 뒤인 지난달 6일이다.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 민주 M 포럼, 천군만마, 국방안보특위 등의 간판을 내건 민주당 지지 예비역 장교 90여명이 모였다. 예비역 군인들이 우르르 대선판에 뛰어든 것이다. 지난달 15일에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일명 ‘대한민국 민주수호 예비역 장병단’의 출범이 예정됐다가 행사 하루 전 갑자기 취소되기도 했다. 대선 때면 후보 캠프마다 예비역들의 줄서기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비상계엄 국면에 볼썽사납다. 염치가 있나 싶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방부 장관을 민간인으로 임명하는 대선 공약을 추진하고 있다. 군 통수권과 국가안보 체계에 대해 몰이해가 깔렸다며 걸고넘어지는 이들이 없지 않다. 민간인이 국방장관에 임명되면 치명적인 안보 공백이 발생한다거나 대한민국 안보를 김정은 정권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비상계엄 사태로 군이 국가와 국민을 외면했다는 데 있다. 어물쩍 넘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군이 계엄의 망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도 급선무다. 그런 점에서 민간인 국방부 장관 임명은 시대적 요구일지 모른다. 물론 새 정부가 하나회를 제거한다면서 다시 하나회 출신 장관을 세웠던 지난날 과오를 다시 범하지 말란 법이 없다. 김용현의 후임이 누가 될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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