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사태로 무슬림 유권자 이탈 타격
백인여성 계층 표심공략도 결국 한계
미국 정치의 오랜 ‘유리천장’이 이번에도 깨지지 않았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5일(현지시간) 치러진 2024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패하며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는 미국 정치의 속설을 끝내 극복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첫 흑인 여성 상원의원으로 ‘여자 오바마’로 불리기도 했던 해리스 부통령은 검사 스타일의 송곳질의 등으로 상원에서 주목받은 뒤 2020년 조 바이든 후보로부터 부통령 후보로 발탁돼 최초의 여성 및 유색인종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후 4년간 부통령으로 쌓은 정치적 자산을 바탕으로 지난 7월21일 고령 논란으로 위기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당 후보로 정식 지명되며 지지율이 급등해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의 기대감을 키웠다. 여성계의 지지도 탄탄했다. 특히,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 재임시절 재구성한 대법원에 의해 2022년 위헌판결을 받은 영향 속 낙태문제가 선거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며 미혼 여성을 중심으로 표 결집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또 다른 배경이자 민주당이 핵심 지지층으로 삼았던 유색인종의 지지세가 무뎌지며 무너졌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해리스 부통령이 2020년 바이든 대통령이 받았던 만큼 유색인종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결국 현실이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해리스 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불법이민 문제를 핵심 이슈로 제기했고, 일자리 불안을 우려한 흑인, 히스패닉층이 이에 동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동 사태로 아랍·무슬림계 유권자들의 민심이 민주당에서 급격히 이탈한 것도 타격으로 작용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히든 해리스’로 여겨진 백인 여성 계층의 표심을 공략해 통해 활로를 찾으려 했다. 이는 선거 막판 일정 부분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도 받았으나, 백인남성을 중심으로 굳건히 조직된 트럼프 지지세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해리스 부통령 스스로가 상승 모멘텀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선후보 지명의 ‘컨벤션효과’가 끝나고 본선 레이스가 본격화한 9월 중후반부터 해리스 부통령이 새 세대 지도자로 구체적 비전과 정책을 지속해서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개표일인 6일 자신의 모교인 워싱턴의 하워드대학교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개표방송을 지켜보기로 했던 해리스 부통령은 끝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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