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콰오아’ ‘글라스’ 동시 진행
원경·근경의 각기 다른 우주 선보여
광활한 화면 속 궤적 따라 포개진 선
수직 영역에서 율동하는 망점의 색면
먼 곳 보던 시선, 내면의 우주로 귀착
◆우주의 망점
우주를 생각하는 일이란 스스로 점이 되어가는 과정과 같다. 무한의 한가운데 미세하게 흔들리는 좌표로서, 그러나 한편 신비하도록 또렷한 마음을 가진 먼지로서의 나를 깨닫는 일. 공중의 푸름 바깥의 공백에 관한 상상은 본 적 없는 모든 형상을 기하학으로 바꾸어 놓는다. 원경을 내다볼수록 심야의 희미한 별들은 거대한 강을 이루고, 어느덧 빛나는 각자의 영토가 된다. 점들을 그러모아 그은 선분이 면적으로 나아가다 이내 부피의 환영을 내비치는 것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유성우처럼 내리쬐는 선들 아래서 산란하는 점들을 좇아 고개를 저으면 잔상 같은 색들이 뒤따라 온다. 망점으로 구성된 색면 위 색연필로 촘촘히 직선을 그어 마련한 화면에 다시금 물감 방울을 점점이 흩뿌려 완성한 지근욱(39)의 회화는 저마다 다른 우주의 전경을 암시하듯 선보인다. 별의 파편이 서로 이끌려 만들어낸 빛의 고리처럼, 화면에 닿는 찰나 부서진 재료의 잔해들은 여백 위에 각기 다른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의 선들은 때로 아주 먼 은하의 생김새를 닮았고 때로 가능한 한 깊숙이 들여다본 생명의 속내를 떠올리도록 한다. 끝없이 먼 곳을 응시하고자 하는 시선은 언제나 결국 가장 가까운 내면의 우주로 되돌아온다.
지근욱이 두 개의 개인전을 동시에 열었다. 이달 7일 성곡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콰오아(Qua-o-ar)’와 15일에 WWNN에서 개막한 ‘글라스(Glass)’는 각각 그가 그린 원경 및 근경의 우주를 선보이는 자리로, 모두 12월8일까지 진행된다. 지근욱은 홍익대학교 판화과 졸업 후 영국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아트&사이언스 석사, 홍익대학교 회화과 박사를 취득했다. 학고재(2023), 에이라운지(2021), 노블레스 컬렉션(2020)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학고재(2022; 2021), 드로잉룸(2022), 에브리아트(2022), 조선일보미술관(2021), 일우스페이스(2020), 유니트 런던(2016, 영국) 등이 연 단체전에 참여했다.
◆콰오아: 고리의 환영
성곡미술관에서 선보이는 개인전 ‘콰오아’는 드넓은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회화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높다란 층고를 가득 메운 ‘스페이스 엔진 ― 더스트’(2024) 연작의 광활한 화면 앞에서 탐색하는 눈동자들은 까맣게 망울진 점이 된다. 보다 큰 장면의 부분을 포착한 형태로서의 화면은 그것이 위치한 장소의 물리적 규모와 긴밀하게 관계 맺는다. 층층이 포개어진 선들의 궤적은 화폭의 윤곽 너머 여백으로의 확장을 암시한다. 공백의 면적에 따라 시야의 범주 또한 달라진다.
콰오아는 해왕성 주변 궤도를 공전하는 왜행성이자 토성처럼 고리를 가진 작은 천체의 이름이다. 행성과 고리의 간격이 매우 멀어 어떠한 중력이 그 형태를 유지하는지 알 수 없기에 신비한 대상이다. 전시의 초입에 실제 관측된 콰오아를 메조틴트 판화로 묘사한 작품이 놓였는데, 너무나 먼 위치 탓에 파편화된 윤곽만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희미하게 빛나는 심연의 존재, 우주를 건너 점이 되어버린 커다란 실재가 그럼에도 분명히 그곳에 있다.
행성의 고리들은 사실 단 한순간도 스스로 고리인 적이 없다. 주어진 중력장 내에서 일정한 공백을 유지한 채 궤도를 따라 운동하는 다수의 입자, 단지 수천의 점일 뿐이다. ‘스페이스 엔진 ― 디스크’(2024) 연작에는 무수한 망점과 선의 중첩이 만들어낸 원반 모양 고리의 환영이 담겼다. 벽면의 양쪽 끝 모서리에 꼭 들어맞도록 기다랗게 제작한 화폭이 생경한 시각 경험을 유도한다. 화면은 현실의 벽면에 틈입한 가상의 우주와 같은 모양새로서 보통의 시야를 재편성한다. 선과 점, 색들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낯선 환영이 태어난다.
◆글라스: 시선의 장막
WWNN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개인전 ‘글라스’는 유리 막을 경유하면서 굴절되는 시선과 같이 바라봄의 불완전성과 유동성을 주제 삼은 회화 연작을 선보인다. ‘교차-형태 스크린’(2024) 연작에서 짧은 호흡으로 그은 수평선들은 좁다란 구획을 벗어나지 않은 채 수직 방향의 띠를 이루는 모습으로 나열된다. 흩뿌려진 점들 또한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수직 영역 안에서만 율동하는데, 그에 이웃하여 매끈한 망점의 색면만이 드러나는 공백의 층위를 남겨 둔 채다.
앞선 전시의 출품작들이 선의 환영을 화면 바깥으로 확장시킨다면, ‘글라스’에 선보인 작품들은 그것을 화면 내부에서 세세하게 분절시킨다. 의도적으로 말끔히 비운 수직의 띠들은 무언의 부피와 무게를 얻는다. 망각이 기억의 필요조건이듯, 미완의 여백은 채움의 몸짓을 한층 가시화한다. ‘교차-형태 스퀘어’(2024) 연작에서 지워진 사각지대는 반투명한 아크릴릭 미디엄의 막으로 재차 덧씌워진다. 안개 낀 듯 모호한 보호막처럼, 흐릿한 만큼 단단한 우리의 현실처럼 말이다.
‘교차-형태 렌즈’(2024) 연작은 중심부에 빛과 같은 공백을 품고 있다. 다채로운 색선의 반복이 이룬 원의 궤적이 문득 여럿의 눈동자들 같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흡수하되 내보내지 않는 동공은 홍채의 이완과 수축에 따라 시야를 조정한다. 한없이 응축하거나 더 멀리 분산하는 빛의 운동은 생명의 망막을 경유하여 시각적 세계를 연다. 다시, 우주를 상상하는 사람은 이내 오롯이 빛나는 점이 된다. 무한의 공백 안에 흔들리는 작은 몸으로서, 선명한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굴절된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눈동자들이 각자의 우주에 별을 띄운다. 그로써 유효한 하나의 망점으로서, 깜박이는 영혼으로서.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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